한겨레 라이브 클립 : ‘무더기 필리버스터’ 한국당에 추천하는 ‘필리버스터 사전’
‘의회에서 다수파의 독주를 막기 위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행위’.
필리버스터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습니다. 최근 자유한국당이 패스트트랙(신속 처리 법안)을 거쳐 본회의 상정을 앞둔 공직선거법 등을 저지하려고 ‘무더기 필리버스터’를 신청해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자당에 불리한 선거법 등을 막으려고 이른바 ‘민식이법’, ‘유치원 3법’ 등 민생법안을 몽땅 틀어막았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그렇다면 진짜 필리버스터는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한겨레 라이브가 필리버스터의 유례와 미국 의회와 우리나라 국회에서 필리버스터가 어떻게 이뤄졌는지를 따져봤습니다.
필리버스터의 어원은 네덜란드 말 ‘사략선'(私掠船·privateer ship)에서 나왔다고 하는데요. 사략선은 유럽이 해양 패권을 쥐었던 15~17세기에 국가가 다른 나라 상선을 노략질하도록 허용하는 무장 선박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국가로부터 면허장을 받은 해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게 정치에 도입돼 다수당의 독주에 맞서는 제도로 정착된 것입니다.
18세기 영국 의회에서 다수당의 법안을 저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필리버스터가 처음 도입되었고, 미국 의회에서는 20세기 들어서, 특히 1970년대 이후에 비교적 자주 필리버스터가 시행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까지 국회가 필리버스터 권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64년 4월21일 임시국회에서 당시 자유민주당 김준연 의원의 체포동의안 통과를 막기 위해 무려 5시간19분 동안 원고도 없이 필리버스터를 진행한 것은 한국 정치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으로 기억됩니다. 정치적 자유를 제한했던 박정희 정권은 1972년 유신을 선포하고, 다음해 필리버스터 제도를 폐지했습니다. 40년 만에 극적으로 필리버스터가 부활한 것은 ‘몸싸움 방지법'으로 불리는 국회선진화법이 2012년 국회를 통과한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미국과 한국에서 필리버스터는 어떻게 운영되었을까요? 그리고 자유한국당의 ‘무더기 필리버스터’와는 어떻게 다를까요?
미국 의회의 대표적인 필리버스터 사례로는 1964년 ‘민권법 필리버스터'가 꼽힙니다. 미국 민권법(Civil Rights Act)은 공공장소 등에서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요. 당시 미국은 ‘흑백분리’가 심각한 사회 문제였고, 이 법은 미국 사회에서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이슈였습니다. 민권법의 초안은 케네디 전 대통령이 잡았지만, 그가 암살당하면서 후임자인 린드 존슨 전 대통령이 서명하고 공포했습니다. 정치적 반대편에 섰던 남부 출신 공화당 의원들은 민권법을 막으려고 83일간 필리버스터를 진행했습니다. 당시 공화당 의원들은 필리버스터를 하면서 의사당에서 법전을 읽거나 심지어 요리책을 읽으면서 ‘계란 요리를 어떻게 해야 맛있을까’를 토론하면서 시간을 때웠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미국 특파원을 지낸 박찬수 한겨레 논설위원실장은 “미국에서는 아주 제한적으로 정치적 쟁점이 강한 사항에만 필리버스터를 신청한다”며 “이번 (자유한국당 사례)처럼 수백개 법안을 무더기로 필리버스터 대상으로 삼는 경우는 없다”고 꼬집었습니다.
우리나라 필리버스터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2016년 2월 ‘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가 꼽힙니다. 당시 정의화 국회의장이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안'을 직권상정하자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중심으로 표결을 막고자 필리버스터를 벌였습니다. 2월23일 열린 본회의에서 김광진 의원을 시작으로 9일 동안 의원 38명이 쉬지 않고 연단에 섰습니다. 세계 최장 필리버스터라는 기록과 함께 국회 밖에서 ‘동조 필리버스터'가 열리는 등 시민들의 큰 호응을 받았습니다.
자유한국당의 무더기 필리버스터는 미국 민권법이나 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김원철 정치팀 기자는 “자유한국당이 필리버스터를 악용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며 “국회 관계자들 사이에서 ‘국회에 디도스 공격을 했다'는 말이 돈다”고 전했습니다. “자기들이 반대하는 법안에 필리버스터를 쓰지 않고, 그 법안의 상정 자체를 막으려고 자기들이 발의하거나 자기들이 주도했던 법안까지 몽땅 걸어서 국회를 마비시켜 버렸다”는 것입니다. 자유한국당이 ‘진짜 필리버스터'를 배워서 한국 정치가 한 단계 발전할 수 있길 기대합니다.
● 제작진
기획: 송호진
진행: 성한용, 출연: 박찬수 김원철
기술감독: 박성영, 오디오 감독: 사공난
카메라: 장승호 윤재욱
CG: 박미래 김수경
작가: 김지혜 김주리
스튜디오 진행: 김현정
연출: 이규호 박종찬 도규만
#한겨레라이브 #자유한국당_필리버스터 #DJ이에배워라
‘의회에서 다수파의 독주를 막기 위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행위’.
필리버스터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습니다. 최근 자유한국당이 패스트트랙(신속 처리 법안)을 거쳐 본회의 상정을 앞둔 공직선거법 등을 저지하려고 ‘무더기 필리버스터’를 신청해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자당에 불리한 선거법 등을 막으려고 이른바 ‘민식이법’, ‘유치원 3법’ 등 민생법안을 몽땅 틀어막았다는 비판을 받습니다.
그렇다면 진짜 필리버스터는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한겨레 라이브가 필리버스터의 유례와 미국 의회와 우리나라 국회에서 필리버스터가 어떻게 이뤄졌는지를 따져봤습니다.
필리버스터의 어원은 네덜란드 말 ‘사략선'(私掠船·privateer ship)에서 나왔다고 하는데요. 사략선은 유럽이 해양 패권을 쥐었던 15~17세기에 국가가 다른 나라 상선을 노략질하도록 허용하는 무장 선박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국가로부터 면허장을 받은 해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게 정치에 도입돼 다수당의 독주에 맞서는 제도로 정착된 것입니다.
18세기 영국 의회에서 다수당의 법안을 저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필리버스터가 처음 도입되었고, 미국 의회에서는 20세기 들어서, 특히 1970년대 이후에 비교적 자주 필리버스터가 시행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까지 국회가 필리버스터 권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64년 4월21일 임시국회에서 당시 자유민주당 김준연 의원의 체포동의안 통과를 막기 위해 무려 5시간19분 동안 원고도 없이 필리버스터를 진행한 것은 한국 정치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으로 기억됩니다. 정치적 자유를 제한했던 박정희 정권은 1972년 유신을 선포하고, 다음해 필리버스터 제도를 폐지했습니다. 40년 만에 극적으로 필리버스터가 부활한 것은 ‘몸싸움 방지법'으로 불리는 국회선진화법이 2012년 국회를 통과한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미국과 한국에서 필리버스터는 어떻게 운영되었을까요? 그리고 자유한국당의 ‘무더기 필리버스터’와는 어떻게 다를까요?
미국 의회의 대표적인 필리버스터 사례로는 1964년 ‘민권법 필리버스터'가 꼽힙니다. 미국 민권법(Civil Rights Act)은 공공장소 등에서 인종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요. 당시 미국은 ‘흑백분리’가 심각한 사회 문제였고, 이 법은 미국 사회에서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이슈였습니다. 민권법의 초안은 케네디 전 대통령이 잡았지만, 그가 암살당하면서 후임자인 린드 존슨 전 대통령이 서명하고 공포했습니다. 정치적 반대편에 섰던 남부 출신 공화당 의원들은 민권법을 막으려고 83일간 필리버스터를 진행했습니다. 당시 공화당 의원들은 필리버스터를 하면서 의사당에서 법전을 읽거나 심지어 요리책을 읽으면서 ‘계란 요리를 어떻게 해야 맛있을까’를 토론하면서 시간을 때웠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미국 특파원을 지낸 박찬수 한겨레 논설위원실장은 “미국에서는 아주 제한적으로 정치적 쟁점이 강한 사항에만 필리버스터를 신청한다”며 “이번 (자유한국당 사례)처럼 수백개 법안을 무더기로 필리버스터 대상으로 삼는 경우는 없다”고 꼬집었습니다.
우리나라 필리버스터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2016년 2월 ‘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가 꼽힙니다. 당시 정의화 국회의장이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 테러방지법안'을 직권상정하자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중심으로 표결을 막고자 필리버스터를 벌였습니다. 2월23일 열린 본회의에서 김광진 의원을 시작으로 9일 동안 의원 38명이 쉬지 않고 연단에 섰습니다. 세계 최장 필리버스터라는 기록과 함께 국회 밖에서 ‘동조 필리버스터'가 열리는 등 시민들의 큰 호응을 받았습니다.
자유한국당의 무더기 필리버스터는 미국 민권법이나 테러방지법 필리버스터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김원철 정치팀 기자는 “자유한국당이 필리버스터를 악용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며 “국회 관계자들 사이에서 ‘국회에 디도스 공격을 했다'는 말이 돈다”고 전했습니다. “자기들이 반대하는 법안에 필리버스터를 쓰지 않고, 그 법안의 상정 자체를 막으려고 자기들이 발의하거나 자기들이 주도했던 법안까지 몽땅 걸어서 국회를 마비시켜 버렸다”는 것입니다. 자유한국당이 ‘진짜 필리버스터'를 배워서 한국 정치가 한 단계 발전할 수 있길 기대합니다.
● 제작진
기획: 송호진
진행: 성한용, 출연: 박찬수 김원철
기술감독: 박성영, 오디오 감독: 사공난
카메라: 장승호 윤재욱
CG: 박미래 김수경
작가: 김지혜 김주리
스튜디오 진행: 김현정
연출: 이규호 박종찬 도규만
#한겨레라이브 #자유한국당_필리버스터 #DJ이에배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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