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다큐 카레이스키150 2편 “레지스탕스 항전” (2014.08.28 방송)
최초 발굴-100년 전 연해주 청소년 공연단 상트 페체르부르크 공연 동영상!
-취재진은 러시아국립영상사진 아카이브에서 연해주 고려인 지도자이자 최재형 선생이 사비를 털어 조직한 80여 명의 한인 청소년 공연단이 매스게임을 하는 동영상을 특종 발굴하였다.
-이 필름은 상트 페체르부르크에서 1913년 열렸던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 탄생 300주년 축하행사에 참가한 고려인 청소년들의 공연 영상이었다. 고려인들이 러시아에 이주한지 50여 년이 되던 이 때 최재형은 고려인의 역량을 러시아 황제 앞에서 선보인 것이다.
-고려인 청소년 공연단이 흰색 한복바지, 저고리를 입고 신식 모자를 쓴 채 집단율동을 씩씩하게 선보이는 장면이 대단히 인상적이다.
체코 현지 취재-체코군단과 연해주 고려인 독립군과의 무기 거래
-오스트리아는 1차세계대전 중에 식민지 체코인들을 징집하여 전선으로 보낸다. 이들 체코인들이 러시아로 도망쳐 만든 군대가 체코군단인데 그 수가 무려 7만 명이었다. 이들은 태평양을 건너 프랑스로 가기 위해 블라디보스톡으로 온다. 이때 경비가 필요했던 체코군단과 무기가 필요했던 고려인 독립군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무기구매가 은밀하게 이뤄졌다.
-체코군단의 무기를 구입하기 위해 일본의 은행을 털었던 15만원(현재가치 75억 원)사건은 영화 '나쁜 놈 참한 놈 이상한 놈'의 모티프가 되기도 했다. 15만원 사건의 주역이었던 애국지사의 후손들을 통해 15만원 사건이 가지는 의미를 짚어본다
-체코 프라하에서 취재진은 체코군단의 지도자였던 가이다 장군이 상해임시정부를 방문해서 받았던 선물의 목록을 발굴하였는데 이는 상해임시정부가 공식적으로 체코군단과 연해주 독립투쟁의 연관성을 인정하는 주요한 자료다. 상해임시정부가 가이다 장군에게 선물한 화병은 막대한 분량의 무기를 우리 독립군들에게 헐값으로 넘겨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청산리 전투의 주역 이범석 장군이 생전에 체코군단과 북로군정서가 은밀하게 대량의 무기를 구매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청산리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었다고 증언하였다. 특히 체코군으로부터 구매한 무기를 은밀하고 신속하게 운반하기 위해서 동포들로 구성된 운반대가 수백 명 규모로 조직되어 연인원 수천 명이 이어받기로 운송한 사실들을 확인했다.
연해주 고려인 독립군 부대 일본군 7만 대군과 싸우다.
-1910년 후반 10만이 넘는 연해주 고려인 사회는 한반도와 잇닿아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연해주를 기반으로 독립투쟁을 벌인다. 특히 1918년 일본군이 러시아혁명에 간섭하며 연해주와 시베리아에 7만 대군을 파병하자 연해주 고려인들은 소비에트 혁명군과 손잡고 일본군과 전면전을 선포한다.
-일본군에 맞서 연해주 곳곳에서 고려인 무장독립군부대가 생겨나는데 한창걸 부대 최호림 부대, 혈성단, 독립단 부대, 솔밭관 부대, 우리 동무군, 대한의용군, 군비단 등 최대 36개 부대 4천여 명의 고려인 독립군이 연해주와 하바롭스크 주 곳곳에서 5년 동안 일본군과 치열한 무장 투쟁을 벌인다.
-올가항 전투, 달레테첸스크 전투, 파르티잔스크 전투, 볼로차예프 전투 등에서 소비에트 혁명군과 연합하여 일본군과 러시아 반혁명군에게 강력한 타격을 준다. 이처럼 지속적이고 강력한 독립전쟁을 계속할 수 있었던 요인은 연해주의 10만 고려인 사회의 적극적인 군자금모집과 각종 후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연해주 고려인 항일무장투쟁의 장엄한 역사는 해방 이후 남북이 나눠지면서 남쪽에서는 반공이데올로기에 가려서 지워졌고 북에서는 김일성 중심의 무장투쟁이 강조되면서 사라졌다. 연해주 고려인 독립투쟁의 역사를 재조명하여 이들의 숭고한 투쟁을 선양해야 할 때다.
러시아 혁명의 주역이 된 고려인
-취재진은 러시아 정치사회역사 도서관에서 1921년 11월 28일 크렘린 궁에서 러시아 혁명의 최고 지도자 레닌과 이동휘 선생을 단장으로 한 고려인 대표단이 조선독립에 관해 깊이 논의한 역사적 자료를 취재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자 고려인들은 전폭적으로 혁명을 지지한다. 고려인들이 혁명을 열렬히 지지한 이유는 계급타파와 민족차별철폐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것은 일본군과 싸우는 소비에트 정부의 정책이 조선독립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러시아 혁명에 대한 고려인의 입장을 생생히 표현하고 있는 보리스 쿠스토디예프의 그림 '제2차 코민테른 대회 기념축제'라는 그림 속의 태극기를 통해 혁명의 열기와 고려인의 기대를 확인해본다. 또한 고려인 독립군 부대의 깃발과 레닌의 연설장에 태극기를 들고 참석한 고려인 대표단의 필름도 취재했다
※"명작다큐 카레이스키150" 관련 영상 보기
1편 “디아스포라 이산” https://youtu.be/n4iPCVjLR2c
2편 “레지스탕스 항전”https://youtu.be/d8Yy9iSer5w
3편 “오딧세이-기나긴 여정”https://youtu.be/WNCzzVizAMc
#카레이스키 #고려인 #독립군
최초 발굴-100년 전 연해주 청소년 공연단 상트 페체르부르크 공연 동영상!
-취재진은 러시아국립영상사진 아카이브에서 연해주 고려인 지도자이자 최재형 선생이 사비를 털어 조직한 80여 명의 한인 청소년 공연단이 매스게임을 하는 동영상을 특종 발굴하였다.
-이 필름은 상트 페체르부르크에서 1913년 열렸던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 탄생 300주년 축하행사에 참가한 고려인 청소년들의 공연 영상이었다. 고려인들이 러시아에 이주한지 50여 년이 되던 이 때 최재형은 고려인의 역량을 러시아 황제 앞에서 선보인 것이다.
-고려인 청소년 공연단이 흰색 한복바지, 저고리를 입고 신식 모자를 쓴 채 집단율동을 씩씩하게 선보이는 장면이 대단히 인상적이다.
체코 현지 취재-체코군단과 연해주 고려인 독립군과의 무기 거래
-오스트리아는 1차세계대전 중에 식민지 체코인들을 징집하여 전선으로 보낸다. 이들 체코인들이 러시아로 도망쳐 만든 군대가 체코군단인데 그 수가 무려 7만 명이었다. 이들은 태평양을 건너 프랑스로 가기 위해 블라디보스톡으로 온다. 이때 경비가 필요했던 체코군단과 무기가 필요했던 고려인 독립군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무기구매가 은밀하게 이뤄졌다.
-체코군단의 무기를 구입하기 위해 일본의 은행을 털었던 15만원(현재가치 75억 원)사건은 영화 '나쁜 놈 참한 놈 이상한 놈'의 모티프가 되기도 했다. 15만원 사건의 주역이었던 애국지사의 후손들을 통해 15만원 사건이 가지는 의미를 짚어본다
-체코 프라하에서 취재진은 체코군단의 지도자였던 가이다 장군이 상해임시정부를 방문해서 받았던 선물의 목록을 발굴하였는데 이는 상해임시정부가 공식적으로 체코군단과 연해주 독립투쟁의 연관성을 인정하는 주요한 자료다. 상해임시정부가 가이다 장군에게 선물한 화병은 막대한 분량의 무기를 우리 독립군들에게 헐값으로 넘겨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청산리 전투의 주역 이범석 장군이 생전에 체코군단과 북로군정서가 은밀하게 대량의 무기를 구매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청산리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었다고 증언하였다. 특히 체코군으로부터 구매한 무기를 은밀하고 신속하게 운반하기 위해서 동포들로 구성된 운반대가 수백 명 규모로 조직되어 연인원 수천 명이 이어받기로 운송한 사실들을 확인했다.
연해주 고려인 독립군 부대 일본군 7만 대군과 싸우다.
-1910년 후반 10만이 넘는 연해주 고려인 사회는 한반도와 잇닿아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연해주를 기반으로 독립투쟁을 벌인다. 특히 1918년 일본군이 러시아혁명에 간섭하며 연해주와 시베리아에 7만 대군을 파병하자 연해주 고려인들은 소비에트 혁명군과 손잡고 일본군과 전면전을 선포한다.
-일본군에 맞서 연해주 곳곳에서 고려인 무장독립군부대가 생겨나는데 한창걸 부대 최호림 부대, 혈성단, 독립단 부대, 솔밭관 부대, 우리 동무군, 대한의용군, 군비단 등 최대 36개 부대 4천여 명의 고려인 독립군이 연해주와 하바롭스크 주 곳곳에서 5년 동안 일본군과 치열한 무장 투쟁을 벌인다.
-올가항 전투, 달레테첸스크 전투, 파르티잔스크 전투, 볼로차예프 전투 등에서 소비에트 혁명군과 연합하여 일본군과 러시아 반혁명군에게 강력한 타격을 준다. 이처럼 지속적이고 강력한 독립전쟁을 계속할 수 있었던 요인은 연해주의 10만 고려인 사회의 적극적인 군자금모집과 각종 후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연해주 고려인 항일무장투쟁의 장엄한 역사는 해방 이후 남북이 나눠지면서 남쪽에서는 반공이데올로기에 가려서 지워졌고 북에서는 김일성 중심의 무장투쟁이 강조되면서 사라졌다. 연해주 고려인 독립투쟁의 역사를 재조명하여 이들의 숭고한 투쟁을 선양해야 할 때다.
러시아 혁명의 주역이 된 고려인
-취재진은 러시아 정치사회역사 도서관에서 1921년 11월 28일 크렘린 궁에서 러시아 혁명의 최고 지도자 레닌과 이동휘 선생을 단장으로 한 고려인 대표단이 조선독립에 관해 깊이 논의한 역사적 자료를 취재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자 고려인들은 전폭적으로 혁명을 지지한다. 고려인들이 혁명을 열렬히 지지한 이유는 계급타파와 민족차별철폐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것은 일본군과 싸우는 소비에트 정부의 정책이 조선독립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러시아 혁명에 대한 고려인의 입장을 생생히 표현하고 있는 보리스 쿠스토디예프의 그림 '제2차 코민테른 대회 기념축제'라는 그림 속의 태극기를 통해 혁명의 열기와 고려인의 기대를 확인해본다. 또한 고려인 독립군 부대의 깃발과 레닌의 연설장에 태극기를 들고 참석한 고려인 대표단의 필름도 취재했다
※"명작다큐 카레이스키150" 관련 영상 보기
1편 “디아스포라 이산” https://youtu.be/n4iPCVjLR2c
2편 “레지스탕스 항전”https://youtu.be/d8Yy9iSer5w
3편 “오딧세이-기나긴 여정”https://youtu.be/WNCzzVizAMc
#카레이스키 #고려인 #독립군
- Category
- 다큐멘터리 - Documentary
- Tags
- 고려인, 독립운동가,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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