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
경기도 포천 일대가 두루 보이는 작은 언덕에
포천 최초의 성당이 세워졌습니다.
건축을 이끈 이는 성당 관계자가 아닌
포천 일대에 주둔한 군부대,
6군단의 이한림 장군이었는데요.
독실한 신자였던 그는
익명의 독지가가 기증한 1천여 평의 대지에
공병 부대원들을 동원해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이한림 장군의 세례명을 딴 별칭이 붙여진 포천성당은
외벽에 화강석을 사용했는데요.
6.25전쟁 여파로
든든한 성곽을 연상시키는 석조 성당을 많이 짓던
당시의 건축 특징이 반영된 결과였습니다.
이후 수십 년간
일대의 많은 사람들에게 편안한 쉼터이자
포천신앙의 중심지가 된 포천성당.
그러던 1990년, 사건이 터졌습니다.
돌 외벽 외에 마룻바닥, 지붕틀 등
나무로 만든 모든 것이 소실됐는데요.
1시간 동안의 화재가 남긴 건
폐허로 변한 성당이었습니다.
이후 지금의 포천성당을 다시 지으며
옛 건물은 철거보다 보존을 선택했는데요.
비록 뼈대만 남았지만
전쟁 직후의 석조성당의 특징이 담긴
역사 건축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2017년 최소한의 수리를 마친 옛 포천성당.
수십 년 전, 화재의 아픈 기억대신
다시 시작될 행복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경기도 포천 일대가 두루 보이는 작은 언덕에
포천 최초의 성당이 세워졌습니다.
건축을 이끈 이는 성당 관계자가 아닌
포천 일대에 주둔한 군부대,
6군단의 이한림 장군이었는데요.
독실한 신자였던 그는
익명의 독지가가 기증한 1천여 평의 대지에
공병 부대원들을 동원해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이한림 장군의 세례명을 딴 별칭이 붙여진 포천성당은
외벽에 화강석을 사용했는데요.
6.25전쟁 여파로
든든한 성곽을 연상시키는 석조 성당을 많이 짓던
당시의 건축 특징이 반영된 결과였습니다.
이후 수십 년간
일대의 많은 사람들에게 편안한 쉼터이자
포천신앙의 중심지가 된 포천성당.
그러던 1990년, 사건이 터졌습니다.
돌 외벽 외에 마룻바닥, 지붕틀 등
나무로 만든 모든 것이 소실됐는데요.
1시간 동안의 화재가 남긴 건
폐허로 변한 성당이었습니다.
이후 지금의 포천성당을 다시 지으며
옛 건물은 철거보다 보존을 선택했는데요.
비록 뼈대만 남았지만
전쟁 직후의 석조성당의 특징이 담긴
역사 건축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2017년 최소한의 수리를 마친 옛 포천성당.
수십 년 전, 화재의 아픈 기억대신
다시 시작될 행복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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