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다큐멘터리 "동해"
우리가 수천 년 동안 불려온 한반도 동쪽 바다의 이름 ‘동해’. 그러나 세계에서는 낯선 이름이다. 수년간 지속된 여러 기관과 민간의 노력으로 과거보다 ‘동해’ 이름 확산이 많이 이루어진 상태지만 여전히 세계에 익숙한 이름은 ‘일본해’이다. 그러나 ‘동해’는 반드시 우리가 되찾아야 할 이름이다.
지난 2012년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모나코 국제수로기구 총회에서 아쉽게도 동해, 일본해 병기는 무산되었다. 그리고 5년이 흐른 지금. 2017년 4월 모나코에서 개최되는 국제수로기구(IHO) 총회를 앞두고 다시 ‘동해’ 이름을 다시 찾기 위한 해결방안을 모색해본다.
수 천 년의 세월 한반도의 수호신 이자 삶의 터전 ‘동해’. 한반도 동쪽의 해가 떠오르는 바다 ‘동해’는 우리의 역사가 바뀌는 동안 변함없이 한반도를 지키는 수호의 대상으로 숭배된 백성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로 시작하는 애국가의 처음 소절은 이러한 동해의 상징성을 보여주고 있다.
동해의 유구한 역사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동해 자락의 곳곳에 남겨진 유적지를 돌아보았다. 660년 현종 원년 당시 강원도 관찰사 허목이 바다를 터로 살아가는 백성들을 위해 세운 ‘척주동해비’와 고려시대 세워진 ‘동해신 묘지’에도 ‘동해’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음이 확인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동해신묘중수기사비’의 잘린 흔적이 다름 아닌 일제강점기에 시작된 일본의 ‘동해’ 이름을 지우려 한 흔적임을 알아냈다. 일본은 왜 ‘동해’를 지우려 했을까?
‘동해’의 시련에는 한반도의 역사가 새겨져 있다. 그 전까지 세계의 지도에서도 통용되었던 우리 바다의 이름은 일제 강점기 급격하게 사라진다. 일제강점기 35년의 세월이 2000년 이상 불려온 우리 바다의 이름을 세계의 지도에서 지우고 만 것이다.
제국주의 서구열강세력의 해상진출 경쟁이 한창이던 1921년 6월 21일 국제수로기구(IHO)가 창립된다. 1929년 해상 안전과 해양 환경 보호를 위해 세계 바다의 명칭을 공식화하기 위한 첫 번째 회의에서 1910년부터 일제가 통치하고 있었던 우리는 대표를 파견할 수 없었다. 전 세계가 사용하는 해도집 (S-23)에 ‘일본해’가 자리함으로써 우리는 ‘동해’ 이름을 잃고 만다.
그 후 식민 지배를 거쳐 6.25 전쟁이 발발과 전쟁 후 황폐해진 민중의 삶을 재건하는 동안 해도집 (S-23) 2차, 3차 개정판이 발행되었다. 3차 개정판이 발행된 53년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세계에서 ‘동해’는 ‘일본해’로 불린다.
1991년 국제연합(UN) 가입과 동시에 우리는 본격적으로 국제 사회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사회의 여론과 노력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동해 이름을 되찾아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과거 수난의 역사를 겪을 당시 의지와 상관없이 벌어진 일을 회복하고 국제사회에서 잃어버린 권리를 되찾는 일이기 때문이다.
‘일본해’를 고수하려는 일본의 입장을 명확하게 알아보기 위해 일본을 찾아 방문, 정치, 외교, 언론, 지리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을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전하고 그들의 주장을 검증해 보았다.
‘일본해’가 세계적으로 공식화되고 정착 된 유일한 명칭이며 이를 병기, 혹은 변경하는 것이 국제 해양질서에 혼란을 일으킬 것이라는 일관된 주장에는 오류가 있었다. 17세기 서양의 다양한 고지도에서 발견되는 ‘동해’ 바다의 다양한 이름은 일본의 주장을 검증하기에 역부족해 보였다.
또한 합의되지 않은 지역의 여러 명칭을 인정한다는 국제기구의 권고사항과 국제기구에서 ‘일본해’라는 이름을 공식 인정한 사실이 없음이 확인 되었다. 그와 더불어 세계 각처에 다양한 이름으로 병기되고 있는 지명의 사례는 물론 세계 해양 전문가 및 지도제작사의 의견을 통해서도 일본의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정부차원의 외교적 노력과 민간의 노력으로 세계의 많은 나라가 ‘동해’를 향한 우리의 마음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지난 2012년 아쉽게도 합의에 이르지는 못하고 미결로 남았지만, 해결을 위한 국제적인 여론은 점차 확대되어 가고 있는 과정에 있다.
세계적인 지도 제작사의 병기 비율 확대와 2014년 버지니아 주 동해 일본해 병기 교과서 법안 통과도 이러한 현상을 잘 보여준다. 세계 곳곳의 많은 전문가들이동해 일본해 명칭의 병기가 가장 평화적인 해결 방안이라고 공통된 해결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동해’ 이름 찾기는 더는 한일 관계가 얽힌 갈등 사안이 아니다. 뼈아픈 역사의 잔재를 청산하고 우리 고유의 이름을 되찾기 위해 이어온 각지 각층의 여러 노력은 이제 과거를 뒤로하고 평화로운 동아시아 시대의 발전을 위해 공존하는 노력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머나먼 여정, 동해 이름을 찾기 위한 길은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동해 #동해신묘중수기사비 #지도
우리가 수천 년 동안 불려온 한반도 동쪽 바다의 이름 ‘동해’. 그러나 세계에서는 낯선 이름이다. 수년간 지속된 여러 기관과 민간의 노력으로 과거보다 ‘동해’ 이름 확산이 많이 이루어진 상태지만 여전히 세계에 익숙한 이름은 ‘일본해’이다. 그러나 ‘동해’는 반드시 우리가 되찾아야 할 이름이다.
지난 2012년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모나코 국제수로기구 총회에서 아쉽게도 동해, 일본해 병기는 무산되었다. 그리고 5년이 흐른 지금. 2017년 4월 모나코에서 개최되는 국제수로기구(IHO) 총회를 앞두고 다시 ‘동해’ 이름을 다시 찾기 위한 해결방안을 모색해본다.
수 천 년의 세월 한반도의 수호신 이자 삶의 터전 ‘동해’. 한반도 동쪽의 해가 떠오르는 바다 ‘동해’는 우리의 역사가 바뀌는 동안 변함없이 한반도를 지키는 수호의 대상으로 숭배된 백성들의 삶의 터전이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로 시작하는 애국가의 처음 소절은 이러한 동해의 상징성을 보여주고 있다.
동해의 유구한 역사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동해 자락의 곳곳에 남겨진 유적지를 돌아보았다. 660년 현종 원년 당시 강원도 관찰사 허목이 바다를 터로 살아가는 백성들을 위해 세운 ‘척주동해비’와 고려시대 세워진 ‘동해신 묘지’에도 ‘동해’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음이 확인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동해신묘중수기사비’의 잘린 흔적이 다름 아닌 일제강점기에 시작된 일본의 ‘동해’ 이름을 지우려 한 흔적임을 알아냈다. 일본은 왜 ‘동해’를 지우려 했을까?
‘동해’의 시련에는 한반도의 역사가 새겨져 있다. 그 전까지 세계의 지도에서도 통용되었던 우리 바다의 이름은 일제 강점기 급격하게 사라진다. 일제강점기 35년의 세월이 2000년 이상 불려온 우리 바다의 이름을 세계의 지도에서 지우고 만 것이다.
제국주의 서구열강세력의 해상진출 경쟁이 한창이던 1921년 6월 21일 국제수로기구(IHO)가 창립된다. 1929년 해상 안전과 해양 환경 보호를 위해 세계 바다의 명칭을 공식화하기 위한 첫 번째 회의에서 1910년부터 일제가 통치하고 있었던 우리는 대표를 파견할 수 없었다. 전 세계가 사용하는 해도집 (S-23)에 ‘일본해’가 자리함으로써 우리는 ‘동해’ 이름을 잃고 만다.
그 후 식민 지배를 거쳐 6.25 전쟁이 발발과 전쟁 후 황폐해진 민중의 삶을 재건하는 동안 해도집 (S-23) 2차, 3차 개정판이 발행되었다. 3차 개정판이 발행된 53년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세계에서 ‘동해’는 ‘일본해’로 불린다.
1991년 국제연합(UN) 가입과 동시에 우리는 본격적으로 국제 사회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사회의 여론과 노력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동해 이름을 되찾아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과거 수난의 역사를 겪을 당시 의지와 상관없이 벌어진 일을 회복하고 국제사회에서 잃어버린 권리를 되찾는 일이기 때문이다.
‘일본해’를 고수하려는 일본의 입장을 명확하게 알아보기 위해 일본을 찾아 방문, 정치, 외교, 언론, 지리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을 만나 그들의 목소리를 전하고 그들의 주장을 검증해 보았다.
‘일본해’가 세계적으로 공식화되고 정착 된 유일한 명칭이며 이를 병기, 혹은 변경하는 것이 국제 해양질서에 혼란을 일으킬 것이라는 일관된 주장에는 오류가 있었다. 17세기 서양의 다양한 고지도에서 발견되는 ‘동해’ 바다의 다양한 이름은 일본의 주장을 검증하기에 역부족해 보였다.
또한 합의되지 않은 지역의 여러 명칭을 인정한다는 국제기구의 권고사항과 국제기구에서 ‘일본해’라는 이름을 공식 인정한 사실이 없음이 확인 되었다. 그와 더불어 세계 각처에 다양한 이름으로 병기되고 있는 지명의 사례는 물론 세계 해양 전문가 및 지도제작사의 의견을 통해서도 일본의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정부차원의 외교적 노력과 민간의 노력으로 세계의 많은 나라가 ‘동해’를 향한 우리의 마음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지난 2012년 아쉽게도 합의에 이르지는 못하고 미결로 남았지만, 해결을 위한 국제적인 여론은 점차 확대되어 가고 있는 과정에 있다.
세계적인 지도 제작사의 병기 비율 확대와 2014년 버지니아 주 동해 일본해 병기 교과서 법안 통과도 이러한 현상을 잘 보여준다. 세계 곳곳의 많은 전문가들이동해 일본해 명칭의 병기가 가장 평화적인 해결 방안이라고 공통된 해결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동해’ 이름 찾기는 더는 한일 관계가 얽힌 갈등 사안이 아니다. 뼈아픈 역사의 잔재를 청산하고 우리 고유의 이름을 되찾기 위해 이어온 각지 각층의 여러 노력은 이제 과거를 뒤로하고 평화로운 동아시아 시대의 발전을 위해 공존하는 노력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머나먼 여정, 동해 이름을 찾기 위한 길은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동해 #동해신묘중수기사비 #지도
- Category
- 다큐멘터리 - Documentary
- Tags
- KBS, 다큐멘터리, doc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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