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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주가 읽는 김경미의 '비망록'[시 읽는 토요일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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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망록/김경미
 
햇빛에 지친 해바라기가 가는 목을 담장에 기대고 잠시 쉴
즈음, 깨어 보니 스물네 살이었다. 신은, 꼭꼭 머리카락까지
조리며 숨어 있어도 끝내 찾아주려 노력치 않는 거만한 술래
여서 늘 재미가 덜했고 타인은 고스란히 이유 없는 눈물 같은
것이었으므로,

스물네 해째 가을은 더듬거리는 말소리로 찾아왔다. 꿈 밖
에서는 날마다 누군가 서성이는 것 같아 달려나가 문 열어보
면 아무 일 아닌 듯 코스모스가 어깨에 묻은 이슬 발을 툭툭
털어내며 인사했다. 코스모스 그 가는 허리를 안고 들어와 아
이를 낳고 싶었다. 석류 속처럼 붉은 잇몸을 가진 아이

끝내 아무 일도 없었던 스물네 살엔 좀더 행복해져도 괜찮
았으련만. 굵은 입술을 가진 산두목 같은 사내와 좀더 오래
거짓을 겨루었어도 즐거웠으련만. 이리 많이 남은 행복과 거
짓에 이젠 눈발 같은 이를 가진 아이나 웃어줄는지. 아무 일
아닌 듯 해도.

절벽엔들 꽃을 못 피우랴. 강물 위인들 걷지 못하랴. 문득
깨어나 스물다섯이면 쓰다 만 편지인들 다시 못 쓰랴. 오래
소식 전하지 못해 죄송했습니다. 실낱처럼 가볍게 살고 싶어
서였습니다. 아무것에도 무게지우지 않도록.
기획: 박유리, 고경태, 낭송: 조성주
영상편집: 위준영
사진 : 탁기형, 이정용, 이정아, 김명건, 김건주, 김종일, 김정효, 박미향, 김건용, 강재훈, 김성광
연출: 이경주, 이재만
Category
TV 채널 - TV Chann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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