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공감 '웰컴 투 굴구지'
■ 내 고향 두메산골
‘야생의 보고’로 유명한 왕피천 하류에서 아홉 굽이를 넘어야 만날 수 있는 곳, 경북 울진의 굴구지 마을은 지금도 마을버스가 다니지 않는 두메산골이다. 이곳에는 지독한 가난이 싫어 고향을 떠났던 사람들의 빈자리를 묵묵히 지키며 사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10년 전, 누구도 관심 갖지 않았던 산촌마을을 되살리기 위해 직접 나섰다. 주민들이 직접 기획하고 십시일반 돈을 모아 마을 홍보 이벤트를 열어 성공했고 전국적인 산촌 생태마을로 떠올랐다. 이들이 주목한 것은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정신- 자연을 있는 그대로 지켜내고 그것을 통해 마을공동체를 되살리고 정 깊은 마을로 거듭났다. 봄이 찾아온 산촌마을, 이들이 두루 함께 잘 사는 법을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지 첩첩 산중 굴구지 마을의 소박한 일상을 만난다
■ 미자씨가 고향으로 돌아온 까닭은?
올해 쉰 아홉 살의 미자씨는 일 년의 대부분을 태백에 있는 자기 집이 아닌 친정집에서 산다. 어릴 적, 가난이 지겨워 빨리 떠나고만 싶었던 고향이 지금은 애틋하다. 지난해 남편 박순도(62세)씨가 갑자기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몸 한쪽을 전혀 움직이지 못했고 말도 못하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앞이 막막했던 그때 떠오른 것이 고향이었고 그 길로 굴구지로 향했다. 이곳에 온 지 9개월이 지나자 남편의 몸이 거의 정상으로 회복됐다. 미자씨의 무너져버린 마음과 남편의 몸을 바로 세운 건 굴구지 마을의 건강한 생태 환경과 넉넉한 인심이었다.
■ 지게와 나물 보따리
진섭 할아버지(91세)는 오늘도 어느 가냐고 묻는 말에 고향에 간다고 했다. 하루걸러 찾아가는 고향집, 그것도 제법 먼 길을 등짐까지 지고 오로지 걸어서 간다. 하지만 그곳에 부모님이 계시기에 힘들다 생각한 적이 없다. 이곳에서 70년을 살다 자식들을 위해 아랫마을로 내려갔다. 진섭 할아버지는 자식 일곱을 뒷바라지 하느라 손에는 굵은 옹이가 박혔지만 묵밭을 일구는 일을 멈춘 적이 없다. 아홉 살 어린 나이에 지게를 짊어졌다는 동석 할아버지는(82세) 나이 든 부모를 돕기 위해 형제들이 떠난버린 고향을 홀로 지켰다. 봄나물은 산촌의 살림밑천으로 집집마다 일손이 바쁘다. 동석 할아버지는 3년전부터 아픈 아내 대신 도맡아 하느라 제대로 허리 펼 날이 없다. 새벽 5시에서 저녁 9시까지 노구를 이끌고 봄나물 작업을 하느라 허리는 굽고 몸은 고단하지만 할아버지는 첫 수확한 나물을 자식들에게 보낼 택배 작업 중이다. 고사리보다 돈이 안 돼 남들은 소작을 맡겼지만 지금도 장현국(72세)씨는 직접 농사를 짓는다 가다랑이 논에 모내기하는 날, 도시에서 사는 다섯 남매가 총출동했다. 모내기를 끝내고 떠나는 자식들에게 어머니 문금순(68세)씨는 그동안 말려뒀던 나물 보따리를 양손 가득 들려준다
■ 산촌은 살아있다
첩첩 산중 두메산골, 굴구지 마을은 1년에 2만 명이 찾는 유명 마을로 주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이곳이 산촌 생태마을로 세상에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지난 2008년. 남중학(53세), 이태양(63세), 김억년(62세), 윤석중(55세)씨 등 마을 청년회를 중심으로 주민 스스로 기획하고 비용을 마련해 축제를 열어 성공을 거뒀고 산촌 생태체험의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야생의 자연이 살아있는 왕피천 생태 탐방과 청정지역 굴구지 마을을 알리는 봄나물 체험, 마을에서 내려오던 전통놀이를 접목한 여름 피라미 축제 등 사계절을 소재로 한 다양한 이벤트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그리고 어버이날, 마을청년회는 멀리서 찾아오지 못한 자식들을 대신해 어른들을 위한 따뜻한 밥상을 마련한다.
#굴구지 #두메산골 #산촌
■ 내 고향 두메산골
‘야생의 보고’로 유명한 왕피천 하류에서 아홉 굽이를 넘어야 만날 수 있는 곳, 경북 울진의 굴구지 마을은 지금도 마을버스가 다니지 않는 두메산골이다. 이곳에는 지독한 가난이 싫어 고향을 떠났던 사람들의 빈자리를 묵묵히 지키며 사는 이들이 있다. 그리고 10년 전, 누구도 관심 갖지 않았던 산촌마을을 되살리기 위해 직접 나섰다. 주민들이 직접 기획하고 십시일반 돈을 모아 마을 홍보 이벤트를 열어 성공했고 전국적인 산촌 생태마을로 떠올랐다. 이들이 주목한 것은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정신- 자연을 있는 그대로 지켜내고 그것을 통해 마을공동체를 되살리고 정 깊은 마을로 거듭났다. 봄이 찾아온 산촌마을, 이들이 두루 함께 잘 사는 법을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지 첩첩 산중 굴구지 마을의 소박한 일상을 만난다
■ 미자씨가 고향으로 돌아온 까닭은?
올해 쉰 아홉 살의 미자씨는 일 년의 대부분을 태백에 있는 자기 집이 아닌 친정집에서 산다. 어릴 적, 가난이 지겨워 빨리 떠나고만 싶었던 고향이 지금은 애틋하다. 지난해 남편 박순도(62세)씨가 갑자기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몸 한쪽을 전혀 움직이지 못했고 말도 못하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앞이 막막했던 그때 떠오른 것이 고향이었고 그 길로 굴구지로 향했다. 이곳에 온 지 9개월이 지나자 남편의 몸이 거의 정상으로 회복됐다. 미자씨의 무너져버린 마음과 남편의 몸을 바로 세운 건 굴구지 마을의 건강한 생태 환경과 넉넉한 인심이었다.
■ 지게와 나물 보따리
진섭 할아버지(91세)는 오늘도 어느 가냐고 묻는 말에 고향에 간다고 했다. 하루걸러 찾아가는 고향집, 그것도 제법 먼 길을 등짐까지 지고 오로지 걸어서 간다. 하지만 그곳에 부모님이 계시기에 힘들다 생각한 적이 없다. 이곳에서 70년을 살다 자식들을 위해 아랫마을로 내려갔다. 진섭 할아버지는 자식 일곱을 뒷바라지 하느라 손에는 굵은 옹이가 박혔지만 묵밭을 일구는 일을 멈춘 적이 없다. 아홉 살 어린 나이에 지게를 짊어졌다는 동석 할아버지는(82세) 나이 든 부모를 돕기 위해 형제들이 떠난버린 고향을 홀로 지켰다. 봄나물은 산촌의 살림밑천으로 집집마다 일손이 바쁘다. 동석 할아버지는 3년전부터 아픈 아내 대신 도맡아 하느라 제대로 허리 펼 날이 없다. 새벽 5시에서 저녁 9시까지 노구를 이끌고 봄나물 작업을 하느라 허리는 굽고 몸은 고단하지만 할아버지는 첫 수확한 나물을 자식들에게 보낼 택배 작업 중이다. 고사리보다 돈이 안 돼 남들은 소작을 맡겼지만 지금도 장현국(72세)씨는 직접 농사를 짓는다 가다랑이 논에 모내기하는 날, 도시에서 사는 다섯 남매가 총출동했다. 모내기를 끝내고 떠나는 자식들에게 어머니 문금순(68세)씨는 그동안 말려뒀던 나물 보따리를 양손 가득 들려준다
■ 산촌은 살아있다
첩첩 산중 두메산골, 굴구지 마을은 1년에 2만 명이 찾는 유명 마을로 주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이곳이 산촌 생태마을로 세상에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지난 2008년. 남중학(53세), 이태양(63세), 김억년(62세), 윤석중(55세)씨 등 마을 청년회를 중심으로 주민 스스로 기획하고 비용을 마련해 축제를 열어 성공을 거뒀고 산촌 생태체험의 대표적인 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야생의 자연이 살아있는 왕피천 생태 탐방과 청정지역 굴구지 마을을 알리는 봄나물 체험, 마을에서 내려오던 전통놀이를 접목한 여름 피라미 축제 등 사계절을 소재로 한 다양한 이벤트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그리고 어버이날, 마을청년회는 멀리서 찾아오지 못한 자식들을 대신해 어른들을 위한 따뜻한 밥상을 마련한다.
#굴구지 #두메산골 #산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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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큐멘터리 - Document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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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다큐멘터리, doc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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