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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bs TV] 영상기록 서울, 시간을 품다 - 제78회 일제 성역을 짓밟다 창경궁 대온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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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창덕궁·덕수궁과 함께 서울의 4대 궁 중 하나로 꼽히는 조선의 동궐(東闕)이었던 창경궁(昌慶宮, 사적 제123호)은 성종 14년(1483)에 창건한 궁이다. 고종의 강제 양위 사건 뒤, 일제는 순종 황제를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창경궁을 대대적으로 훼손하기 시작했다. 창경궁은 식물원뿐만 아니라 동물원과 박물관의 건립으로 궁의 모습을 잃고 1911년에는 창경원으로 바뀌는 굴욕을 겪기도 하였다. 일본의 조선왕궁 훼손 사업의 일환으로 창경궁에 동․식물원이 조성되면서 가장 먼저 건립된 건물은 대온실이었다. 일제 강점기를 거쳐 광복 후에도 창경궁은 창경원인 채로 오랫동안 유원지로 방치되었고 관광시설로 이용되었다. 동․식물원이 과천 서울대공원으로 이전하면서 일제에 의해 건립된 시설들이 모두 철거됐고 3년 만인 1986년 창경궁은 비로소 일부지만 옛 모습을 찾았다. 대온실의 설계는 프랑스 유학파 후쿠바 하야토는 창경궁 대온실의 모델이 된 일본 신주쿠 온실 건립에도 관여했다. 일본과 한국에 최초로 서양식 온실을 도입한 인물로 창경궁 대온실을 포함한 그의 작품들은 외관과 양식의 유사성을 보여주고 있다. 신주쿠 어원의 서양식 온실의 경우 창경궁 대온실과 규모에서 차이가 나지만 외관은 유사한 형태를 하고 있다. 대온실은 34m×16m의 장방형으로 남측과 양측에 출입용 전실(前室) 배치했다. 최고 높이 10.5m의 1층 서양식 온실로 철골과 유리, 목재 혼용했다. 네이브(중앙통로)와 목재 혼용아일(양측 복도)로 구성된 내부는 철재 트러스로 받친 지붕과 온실 채광을 위해 클리어 스토리(고측창)를 설치했다. 외부는 화강석 기단에 모스크형의 목재 창살을 둘러 장식성을 강조했다. 대온실은 서양에서 유입된 최초의 근대식 온실이라는 점에서 지난 2004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고 조선의 5대 궁궐 중 일제의 유린이 가장 심했던 창경궁. 건축학적 가치 외에도 창경궁 대온실이 보존돼야 할 역사적 이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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