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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그리고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모습은? | 광복절 기획 다큐인사이트 현대사 아카이브 - 세계의 소리 그리고 해방 한국 | KBS 20240815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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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현대사 영상프로젝트팀에서는 전 세계 곳곳에 흩어져있는 근현대사 영상과 오디오 자료를 수집, 아카이빙하고 있다. 역사의 비어 있는 사이 사이를 메워가는 작업이다. 새로운 기록들이 더해지면, 우리는 지금껏 보지 못했던 또 다른 역사의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광복절 특집 [세계의 소리 그리고 해방 한국]에서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의 국제 정세, 그리고 그 격동의 시간 속에서 세계가 목격한 우리의 모습에 집중했다.

# 태평양 전쟁이 한창일 무렵, ‘한국’을 말하다.
1942년 한인자유대회에서 ‘미국 고위 관리가 최초로 한국을 언급’했다는 기록. 그 연설의 주인공은 미국 역대 대통령 가운데 누구보다도 대중을 설득하고 소통하는 능력이 뛰어났다는 평가를 받는 루스벨트다.

“한국인들은 일본의 가혹한 전제정치를 뼈아프게 느끼고 있습니다.”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 (1942년 2월 23일, 조지 워싱턴 탄생 기념 라디오 연설)

이어 루스벨트는 영국 총리 처칠, 중국 총통 장개석와 한국의 독립을 세계에 최초로 천명한 ‘카이로 선언’에서 ‘적절한 시기에(in due course)’ 한국은 독립 국가가 될 것이라며 다시 한 번 한국을 언급했다.

이어 1945년, 미국 버지니아주의 핫 스프링스에서 ‘제9차 태평양회의’가 개최됐다. 한국 문제와 관련해 ’카이로 선언‘이 주목받았다. ‘적절한 시기’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놓고 해석이 분분한 가운데, 재미한인사회의 전경무, 정한경, 유일한이 한국대표단으로 참석했다. 미국 언론은 한국대표단 전경무의 연설 내용을 상세하게 전달하며 한국인들의 독립을 향한 의지와 절실함을 알렸다.

“한국 대표의 해석으로는, 한국이 주권을 완전히 갖기까지의 기간이
‘일본의 패배 이후 6개월을 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라고 했습니다.
한국인의 자치 능력에 대해서도 논의가 진행됐습니다.

# 1946년 8월 광복 1주년 : 한국, 주동적 정신으로 국제 무대에 나아가자
“오늘은 내가 주동적이 되지 못한다고 하는 그런 한탄을 버리고
자주적 정신으로, 오늘 하루 지내는데 아주 활발하고 용감하게 힘써서
오늘 하루를 잘 지내시기를 바랍니다” - 백범 김구

1946년 8월, 광복 1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이 장엄한 축하 행사에 엄청난 군중이 몰려들었다. 광복의 의미를 되새기는 백범 김구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며 광장을 빽빽하게 채운 사람들 사이로 퍼져 나갔다. 한국이 강대국들의 힘겨루기에 휩쓸려 여기까지 왔으나 오늘만큼은 결코 주동적 정신을 잃지 말라는 외침. 이어 그의 선창에 군중이 화답했다.

# 1947년 보스턴 마라톤 : 태극기를 가슴에 품고 뛴 금메달리스트 ‘서윤복’

1947년 세계 최고의 역사를 지닌 미국 보스턴 마라톤에서 한국인이 우승을 차지한다. 금메달을 목에 건 그는 시상대 가장 위에서 ‘대한민국’의 이름을 드높였다. 기존의 기록을 1분이나 단축한 역사적 우승이었다.

"우리 태극기를 가슴에 붙이고 세계 무대에 나가서 승리의 깃발을 올렸다는 것은
전 세계를 향한 씩씩한 소리로 전달하였을 줄로 믿습니다.”
-서윤복

# 최초의 국회의원 선거, 5·10 총선거
“세계 안보를 되찾기 위해 필요한 것은 소련의 방해와 침략을 종식시키는 겁니다.
한국을 위한 통일된 국민 정부 수립이 필요합니다.”
-미국 트루먼 대통령

1945년 ‘모스크바협정’ 결의에 따라 한국에 통합정부를 세우기 위한 ‘미소공동위원회’가 설치되었다. 그러나 2차에 걸친 ‘미소공동위원회’는 결렬되었고, 한국 문제는 유엔에 상정됐다. 유엔은 남북한 총선거를 실시해 한반도에 하나의 정부를 세우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소련과 북한은 이 결정에 반대하며 유엔 한국 임시 위원단이 북쪽에 오지 못하도록 막았고, 결국 1948년 5월 10일 남한에서만 총선거를 치르게 된다. 미국은 미소의 날카로운 대립 속에서도 92%의 투표율을 기록한 한국 첫 선거의 과정을 상세하게 보도했다.

“수도 서울을 비롯해 남한 전역의 시민들이 투표 준비에 한창입니다.
남쪽 지역은 미군이 점령하고 있는 반면, 북쪽 지역은 소련군의 통제 하에 있습니다.
비행기는 투표에 참여하라고 촉구하는 전단지를 마을마다 뿌리고 있습니다.”
-유니버설 뉴스

# 이승만 대통령, 다시 미국에 가다.
제2차 세계 대전의 상흔이 채 아물기도 전, 한반도는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다. 전쟁이 끝난 1954년, 이승만 대통령은 다시 미국을 방문했다.

“각하께서 워싱턴을 방문하신 것은 1947년 이후 처음인데요.
아마도 오늘날 세계에서 한국 국민만큼
미국인들이 각별한 애정과 경탄, 존경심을 품고 있는 대상은 없을 것입니다.”
-당시 미국 닉슨 부통령

이승만 대통령은 1904년 처음 워싱턴을 방문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한미간의 오랜 우정을 강조했다. 한미재단은 뉴욕에서 열린 만찬에 이승만 대통령을 초대했고 미국 언론은 그가 목이 멘 채 눈물을 글썽이며 미국의 도움에 감사를 표하고 공산주의를 막기 위한 협력을 호소하는 모습을 전한다.

“우리는 눈물을 삼키며, 조용한 결의와 미소로 가난과 파괴에 맞서 싸우는
힘든 과업에 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구걸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결코 그러지 않을 겁니다.
우리 친구들이 주는 어떤 도움에도 감사할 것이며, 그 감사의 마음을 간직할 것입니다.”

1945년 2차 대전 종식 이후 냉전이라는 또 하나의 전쟁을 치렀던 세계. 그리고 그들이 목격한 해방 한국의 모습은 8월 15일 목요일 밤 10시 KBS 1TV KBS 현대사 아카이브 [세계의 소리 그리고 해방 한국]에서 보다 생생한 영상과 소리로 확인할 수 있다.
Category
다큐멘터리 - Documentary
Tags
KBS, 다큐멘터리, document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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