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발’의 가면, 징발
선발된 학생들에게는 숙식제공은 물론이고 학업을 이어가게 해주겠다고 했다. 가난 때문에 중학교 진학이 어려웠던 정선영 옹은 많은 동무들과 함께 지원을했다. 하지만 당시 일본인 모집인은 이미 선발해갈 대상자들의 사진명부까지 들고 왔고, 그들이 데려간 곳은 학교가 아닌 나고야 비행장이었다. 그해 12월 나고야 대지진이 났고, 동무들이 죽었다. 부족한 끼니에 쓰레기통을 뒤지며 죽기살기로 버틴 정선영 옹은 해방이 되고 나서야 고국에 돌아올 수 있었다.
갑작스러운 경찰서 호출에 불려간 최광호 옹은 영문도 모른 채 배에 올랐다. 배에서 내려 기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당시 일본령이던 사할린 섬의 탄광. 그 또한 해방이 되고서야 한국에 돌아올 수 있었다. 선발이 아니라 강제 노동을 위한 징발이었다. 취재한 12명 생존자들(유족 포함)의 징용순간을 상기해본다.
■ 살거나 혹은 죽거나
전차가 지나갈 때 폭탄을 안고 끼어들라는 임무를 받은 가재학 옹(취재 후 사망), 만주 방직공장에 징용돼 밥먹고 자는 거 외에는 실 뽑는 일만 하며 갇혀지내야 했던 이임순 옹, 당시 조선에서는 군면제였지만 일본 해군에 강제 입대해 폭격 속에 활주로 터를 닦아야 했던 오병배 옹 등 징용된 그들은 ‘살아남아서 가족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오기 하나로 죽음 앞에 그들의 삶을 던져야 했다. 살기 위해 죽음의 선을 넘을 수밖에 없었던 징용의 처절한 낱낱을 피해자들의 육성을 통해 들어 본다.
■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조세이 탄광 수몰 희생자)
죽음을 무릅쓰고 탈출해 돌아온 생존자, 지옥같은 징용생활을 견디다 해방이 되고서야 돌아온 생존자, 살아남은 자들은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다시 조국 땅을 밟았지만 해방이 되고도 80년이 다 된 지금까지도 여전히 그곳에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징용된 곳에서 죽음을 맞이한 피해자들이다.
대표적인 곳 중 하나가 징용된 조선인 136명이 사고로 수몰된 조세이탄광(해저탄광). 제작진은 조세이 현장을 찾아가 유해 봉환을 위해 애쓰고 있는 이들을 취재하고, 조세이탄광 징용피해자 유족의 육성을 통해 그날의 진실과 ‘왜 그들이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지’ 외면당한 현실을 들여다본다.
■ 지하 탄광의 줄임말, 지옥(미이케 탄광, 하시마)
징용된 조선인들의 강제 노동현장은 군부대, 방직공장, 탄광 등 수없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조선인 강제동원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곳은 탄광이다. 채굴작업은 기본이고 탄맥을 찾아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리는 위험천만한 일은 늘 조선인의 몫이었다. 콩깻묵이나 인근 바다에서 캔 조개를 넣어 끓인 국 한 사발이 하루 식사의 전부였고, 급여는 없거나 있더라도 일본인의 3분의 1내지 5분의 1수준으로만 지급됐다. 지하 갱도로 들어갈 때마다 ‘오늘은 살아서 나올 수 있을까’ 지옥문을 들어서는 심정으로 낮과 밤도 알 수 없는 곳에서 하루 10시간 넘는 노동을 해야 했던 조선인 노동자들. 하지만 조선인들의 피눈물로 얼룩진 그 현장들 중에 지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이 있다. 미이케 탄광과 하시마(군함도). 징용을 자행한 일본에 ‘문화유산’이라는 자부심을 안겨준 조선인들의 지옥, 미이케 탄광과 하시마(군함도)를 찾아가 본다.
* 하시마가 정식명칭
■ 외면의 현실
일본 나가사키시의 한 공원에는 '일중우호 평화부전(不戰)의 비'가 세워져 있다. 일제 강점기 조선인이 강제 노역한 하시마 해저 탄광을 운영했던 일본 미쓰비시머티리얼의 돈으로 건립한 비석이다. 전쟁 중 하시마, 다카시마, 사키토지마 등 나가사키현에 있는 섬 지역 탄광 세 곳에 중국인 845명이 강제 연행돼 미쓰비시머티리얼의 전신인 미쓰비시광업 또는 그 하청업체에서 강제 노역한 사실에 대해 용서와 화해를 구하는 결과물이다. 비석 뒷면에는 통절한 반성과 심심한 사죄, 애도의 뜻을 표명하며 중국인 피해자들의 이름까지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그 어디에도 조선인 강제노역에 대한 사죄나 배상에 관한 언급은 보이지 않는다. 중국의 피해는 인정하고, 조선인의 피해는 외면하고 있는
일본의 민낯을 마주해본다. 아울러 한국 정부에서는 일제강점기 징용 노동자들의 피해 보상에 대해 어디까지 ‘직시’하고 있는지, 혹 형식적인 절차를 앞세워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 현주소를 기록해본다.
※ 이 영상은 2023년 3월 1일 방영된 [특집 - 외면의 기록, 생존자] 입니다
#외면 #생존자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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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발된 학생들에게는 숙식제공은 물론이고 학업을 이어가게 해주겠다고 했다. 가난 때문에 중학교 진학이 어려웠던 정선영 옹은 많은 동무들과 함께 지원을했다. 하지만 당시 일본인 모집인은 이미 선발해갈 대상자들의 사진명부까지 들고 왔고, 그들이 데려간 곳은 학교가 아닌 나고야 비행장이었다. 그해 12월 나고야 대지진이 났고, 동무들이 죽었다. 부족한 끼니에 쓰레기통을 뒤지며 죽기살기로 버틴 정선영 옹은 해방이 되고 나서야 고국에 돌아올 수 있었다.
갑작스러운 경찰서 호출에 불려간 최광호 옹은 영문도 모른 채 배에 올랐다. 배에서 내려 기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당시 일본령이던 사할린 섬의 탄광. 그 또한 해방이 되고서야 한국에 돌아올 수 있었다. 선발이 아니라 강제 노동을 위한 징발이었다. 취재한 12명 생존자들(유족 포함)의 징용순간을 상기해본다.
■ 살거나 혹은 죽거나
전차가 지나갈 때 폭탄을 안고 끼어들라는 임무를 받은 가재학 옹(취재 후 사망), 만주 방직공장에 징용돼 밥먹고 자는 거 외에는 실 뽑는 일만 하며 갇혀지내야 했던 이임순 옹, 당시 조선에서는 군면제였지만 일본 해군에 강제 입대해 폭격 속에 활주로 터를 닦아야 했던 오병배 옹 등 징용된 그들은 ‘살아남아서 가족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오기 하나로 죽음 앞에 그들의 삶을 던져야 했다. 살기 위해 죽음의 선을 넘을 수밖에 없었던 징용의 처절한 낱낱을 피해자들의 육성을 통해 들어 본다.
■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조세이 탄광 수몰 희생자)
죽음을 무릅쓰고 탈출해 돌아온 생존자, 지옥같은 징용생활을 견디다 해방이 되고서야 돌아온 생존자, 살아남은 자들은 갖은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다시 조국 땅을 밟았지만 해방이 되고도 80년이 다 된 지금까지도 여전히 그곳에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징용된 곳에서 죽음을 맞이한 피해자들이다.
대표적인 곳 중 하나가 징용된 조선인 136명이 사고로 수몰된 조세이탄광(해저탄광). 제작진은 조세이 현장을 찾아가 유해 봉환을 위해 애쓰고 있는 이들을 취재하고, 조세이탄광 징용피해자 유족의 육성을 통해 그날의 진실과 ‘왜 그들이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지’ 외면당한 현실을 들여다본다.
■ 지하 탄광의 줄임말, 지옥(미이케 탄광, 하시마)
징용된 조선인들의 강제 노동현장은 군부대, 방직공장, 탄광 등 수없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조선인 강제동원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곳은 탄광이다. 채굴작업은 기본이고 탄맥을 찾아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리는 위험천만한 일은 늘 조선인의 몫이었다. 콩깻묵이나 인근 바다에서 캔 조개를 넣어 끓인 국 한 사발이 하루 식사의 전부였고, 급여는 없거나 있더라도 일본인의 3분의 1내지 5분의 1수준으로만 지급됐다. 지하 갱도로 들어갈 때마다 ‘오늘은 살아서 나올 수 있을까’ 지옥문을 들어서는 심정으로 낮과 밤도 알 수 없는 곳에서 하루 10시간 넘는 노동을 해야 했던 조선인 노동자들. 하지만 조선인들의 피눈물로 얼룩진 그 현장들 중에 지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이 있다. 미이케 탄광과 하시마(군함도). 징용을 자행한 일본에 ‘문화유산’이라는 자부심을 안겨준 조선인들의 지옥, 미이케 탄광과 하시마(군함도)를 찾아가 본다.
* 하시마가 정식명칭
■ 외면의 현실
일본 나가사키시의 한 공원에는 '일중우호 평화부전(不戰)의 비'가 세워져 있다. 일제 강점기 조선인이 강제 노역한 하시마 해저 탄광을 운영했던 일본 미쓰비시머티리얼의 돈으로 건립한 비석이다. 전쟁 중 하시마, 다카시마, 사키토지마 등 나가사키현에 있는 섬 지역 탄광 세 곳에 중국인 845명이 강제 연행돼 미쓰비시머티리얼의 전신인 미쓰비시광업 또는 그 하청업체에서 강제 노역한 사실에 대해 용서와 화해를 구하는 결과물이다. 비석 뒷면에는 통절한 반성과 심심한 사죄, 애도의 뜻을 표명하며 중국인 피해자들의 이름까지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그 어디에도 조선인 강제노역에 대한 사죄나 배상에 관한 언급은 보이지 않는다. 중국의 피해는 인정하고, 조선인의 피해는 외면하고 있는
일본의 민낯을 마주해본다. 아울러 한국 정부에서는 일제강점기 징용 노동자들의 피해 보상에 대해 어디까지 ‘직시’하고 있는지, 혹 형식적인 절차를 앞세워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 현주소를 기록해본다.
※ 이 영상은 2023년 3월 1일 방영된 [특집 - 외면의 기록, 생존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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