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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솔아의 '티브이'[시 읽는 토요일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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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브이/임솔아
  
그렇게 슬퍼? 광복 70주년 기념 프로그램에서 숭례문이 불타고 있었다.
로션을 바르는 것처럼 그는 콧물을 손바닥으로 문지른다. 
우리나라 국보 1호인데 가슴이 미어진다며 운다.
나는 키즈 과학체험을 보며 운다. 소의 배에 구멍을 뚫고 아이들에게
손을 넣게 한다. 소야. 커다란 눈을 껌뻑이는 소야.  
아이들이 배에서 꺼낸 곤죽이 된 음식물을 허연 침을 뚝뚝 흘리면서 핥는 소야.  
나는 콧물을 풀고 눈물을 닦으며 티브이를 본다.  
지금은 긴급속보에서 카트만두가 무너지고 있다. 
사망자가 팔백 명이라더니 내가 이 시를 쓰는 동안 사천 명으로 늘었다. 
왜 울지 않아? 우리나라 이야기가 아니라서 그는 눈물은 안 난다고 한다.
티브이에서 본 비극을 모아 나는 지금 시를 방영한다. 
뛰어난 인류를 상상한 독재자가 학살을 만든 다큐를 보았고 
머리채를 잡힌 여자가 중심가를 질질 끌려가며 죽어갔고 
수백의 사람들이 구경만 했다는 뉴스를 감자칩을 먹으며 메모했다.
잔재 아래에서 울음소리가 올라온다. 이름이 뭐예요? 대답하세요. 구조대 올 거예요.  
말을 해요. 그래야 살 수 있어요. 나는 티브이에게 말을 시킨다. 
깜박깜박 졸음에 빠지는 티브이를 깨운다. 
나는 티브이 속으로 들어간다. 차벽 너머의 그를 만난다.  
우리는 마주보고 있다. 이곳은 마주보는 것을 대치 중이라 한다.  
이 차벽 너머에서 그가 등을 돌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등을 돌려야만 같은 티브이를 볼 수 있다. 나는 뒤를 돌아본다.
기획: 박유리, 고경태, 낭송: 임솔아, 영상편집: 위준영, 영상 : 이경주
연출: 이경주, 이재만
Category
TV 채널 - TV Chann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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