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역이 주목한 '제2의 등려군', 웬청쒸
중국 출신의 웬청쒸(48세).
유복한 가정에서 5남매 중 막둥이로 태어난 그녀는,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자랐다.
끼 많고 애교 많은 이 소녀, 17세에 ‘연예인 공무원’이라 불리는
‘중국 국립 가무단’ 단원으로 발탁된다.
가무단 순회공연으로 ‘웬청쒸’라는 이름을 전국에 알리기 시작하더니,
대만의 등려군이 부른 ‘첨밀밀’을 다시 불러 중국 본토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된다.
1989년 중국 CCTV-LNTV 가요대상, 1992년 중국 MTV 가요대상 등
각종 상을 휩쓸며 그녀는 ‘제 2의 등려군’ 으로 승승장구한다.
화려한 인기와 부를 누리던 웬청쒸. 그런 그녀가 중국에서 홀연히 사라졌다는데…
20년 후, 대한민국 부산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그녀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코리안 드림이 바꾼 한 여가수의 운명
화려하고 안정된 생활에 만족할 법도 하련만,
20대의 젊은 웬청쒸가 모든 것을 포기하게 만든 사건이 있었으니.
그것은 ‘한국’과의 만남이었다.
가무단 활동 시절, CF 촬영차 방문했던 한국은 그녀에게 신세계로 다가왔다.
젊은 그녀의 눈에 그저 모든 게 아름답게만 보였던 한국… 그녀는 어렸고 용감했다.
노래 실력만큼은 자신 있었기에, 그녀는 새로운 도전이 두렵지 않았다.
중국에서처럼 한국에서도 잘 나가는 가수가 되리라 결심한 그녀,
한국인으로 귀화 후 ‘헤라’라는 예명으로 한국 활동을 시작한다.
하지만 한국 무대의 벽은 높았다. 긴 무명생활 탓에 생활고도 겪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였다.
바로 외국인에 대한 편견과 마주한 것.
‘중국 냄새가 난다.’라며 무작정 그녀의 노래를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다.
중국으로 돌아갈까도 생각했지만, 실패했다는 이유로 돌아가기엔 자존심이 상했다.
더구나 이젠 내 나라가 된, ‘대한민국’에서 꼭 성공을 하고 싶었다.
한국에서의 생활을 통해 알게 된 인생의 희로애락은,
예쁘고 철없던 한 여가수의 노랫가락에 오롯이 담겼다.
“(중국에서의 생활과) 비교하면 슬픈데, 후회는 안 해요.
인생을 안 것 같아요.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귀화인 최초, '국민 가수'를 꿈꾸다.
한국에서 활동한 탓에 중국에 있는 부모님의 임종도 지키지 못한 웬청쒸.
아직도 부모님 이야기만 나오면 눈물을 글썽인다.
그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에 시작한 것이 양로원 봉사활동이다.
부모님 연배의 어르신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구성진 트로트도 한 소절 뽑으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단다.
또한 그녀가 한국에서 자리를 잡고 새롭게 시작한 일은,
다문화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이었다.
다문화 예술인들의 모임인 ‘한국다문화예술원’을 만들고,
다문화 가족의 멘토가 되어주는 등 각종 다문화 관련 활동과 봉사 활동을 하다 보니,
얼마 전에는 ‘대한민국 모범기업인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녀가 사랑해서 선택한 나라, 대한민국
한국 무대에서 귀화인 최초로 ‘국민 가수’가 되고 싶다는
웬청쒸의 목표는 현재 진행형이다.
#알고e즘 #중국 #가수 #웬청쒸 #다문화 #국민가수 #트로트 #노래 #한국 #잠적
????방송정보
????프로그램명: 다문화 사랑 - 웬청쒸의 나는 다문화 가수다
????방송일자: 2013년 12월 4일
중국 출신의 웬청쒸(48세).
유복한 가정에서 5남매 중 막둥이로 태어난 그녀는, 가족의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자랐다.
끼 많고 애교 많은 이 소녀, 17세에 ‘연예인 공무원’이라 불리는
‘중국 국립 가무단’ 단원으로 발탁된다.
가무단 순회공연으로 ‘웬청쒸’라는 이름을 전국에 알리기 시작하더니,
대만의 등려군이 부른 ‘첨밀밀’을 다시 불러 중국 본토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된다.
1989년 중국 CCTV-LNTV 가요대상, 1992년 중국 MTV 가요대상 등
각종 상을 휩쓸며 그녀는 ‘제 2의 등려군’ 으로 승승장구한다.
화려한 인기와 부를 누리던 웬청쒸. 그런 그녀가 중국에서 홀연히 사라졌다는데…
20년 후, 대한민국 부산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그녀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코리안 드림이 바꾼 한 여가수의 운명
화려하고 안정된 생활에 만족할 법도 하련만,
20대의 젊은 웬청쒸가 모든 것을 포기하게 만든 사건이 있었으니.
그것은 ‘한국’과의 만남이었다.
가무단 활동 시절, CF 촬영차 방문했던 한국은 그녀에게 신세계로 다가왔다.
젊은 그녀의 눈에 그저 모든 게 아름답게만 보였던 한국… 그녀는 어렸고 용감했다.
노래 실력만큼은 자신 있었기에, 그녀는 새로운 도전이 두렵지 않았다.
중국에서처럼 한국에서도 잘 나가는 가수가 되리라 결심한 그녀,
한국인으로 귀화 후 ‘헤라’라는 예명으로 한국 활동을 시작한다.
하지만 한국 무대의 벽은 높았다. 긴 무명생활 탓에 생활고도 겪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사람들에게 받은 상처였다.
바로 외국인에 대한 편견과 마주한 것.
‘중국 냄새가 난다.’라며 무작정 그녀의 노래를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다.
중국으로 돌아갈까도 생각했지만, 실패했다는 이유로 돌아가기엔 자존심이 상했다.
더구나 이젠 내 나라가 된, ‘대한민국’에서 꼭 성공을 하고 싶었다.
한국에서의 생활을 통해 알게 된 인생의 희로애락은,
예쁘고 철없던 한 여가수의 노랫가락에 오롯이 담겼다.
“(중국에서의 생활과) 비교하면 슬픈데, 후회는 안 해요.
인생을 안 것 같아요.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귀화인 최초, '국민 가수'를 꿈꾸다.
한국에서 활동한 탓에 중국에 있는 부모님의 임종도 지키지 못한 웬청쒸.
아직도 부모님 이야기만 나오면 눈물을 글썽인다.
그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에 시작한 것이 양로원 봉사활동이다.
부모님 연배의 어르신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구성진 트로트도 한 소절 뽑으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단다.
또한 그녀가 한국에서 자리를 잡고 새롭게 시작한 일은,
다문화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이었다.
다문화 예술인들의 모임인 ‘한국다문화예술원’을 만들고,
다문화 가족의 멘토가 되어주는 등 각종 다문화 관련 활동과 봉사 활동을 하다 보니,
얼마 전에는 ‘대한민국 모범기업인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녀가 사랑해서 선택한 나라, 대한민국
한국 무대에서 귀화인 최초로 ‘국민 가수’가 되고 싶다는
웬청쒸의 목표는 현재 진행형이다.
#알고e즘 #중국 #가수 #웬청쒸 #다문화 #국민가수 #트로트 #노래 #한국 #잠적
????방송정보
????프로그램명: 다문화 사랑 - 웬청쒸의 나는 다문화 가수다
????방송일자: 2013년 12월 4일
- Category
- 문화 - Culture
- Tags
- EBS, EBS culture, EBS 교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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