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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해방 직후 조선총독부는2주동안 140억 현금을 발행?! 일본의 이익과 안전을 꾀하고자 했던 조선총독부 최후의 25일! (KBS 20130815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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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해방을 맞다. 그러나...
8월 15일 패전을 맞은 조선총독부는 소련군의 남하에 겁에 질려있었다. 그날 아침 조선총독부는 여운형을 치안 유지 협력과 일본인의 안전보장을 부탁한다. 소련군에게 점령당할 시 조선인들에게 기대려는 속셈이었다.
하지만 일주일 후인 8월 20일 조선총독부는 일본군 1만여 명을 경찰병력으로 전환하여 조선인들에게 뺏긴 경찰서, 방송국, 철도역 등을 다시 탈환한다. 항복선언 후 불과 일주일. 이땅의 권력은 다시 조선총독부 수하로 들어갔다.
38도선 이남은 미군이 진주할 것을 통보받은 총독부는 안도하며 제2의 음모를 획책한다.

■ 총독부의 숨겨진 음모 - 미군정을 일제의 편으로
조선을 점령할 미군은 아직 들어오지 않았다.
조선사정에 백지나 마찬가지인 미점령군에게 조선총독부는 조선사회가 공산주의에 물든 것으로 각인시키고, 미군 점령 후 조선인이 아닌 일본인들이 미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계획을 획책한다. 갈등하기 시작한 소련과 미국의 틈을 파고든 것이다.
9월 8일 미군이 들어왔고 그들은 조선총독부가 흘려준 거짓 정보를 그대로 믿었다. 미군 점령 하, 총독부는 해체됐지만 총독부의 영향력은 여전했다. 그들은 패전국이었지만 미군정과 같은 편이 되었다.

■ 2주일동안 140억원의 현금을 만들다.
항복에서 미군진주까지 25일간의 공백, 그 사이 조선총독부와 조선은행은 전대미문의 화폐발행을 획책한다.
당시 조선은행권의 발행고는 40억원. 하지만 815이후 2주간 그때까지의 총 발행고 3배를 넘는 140억원의 화폐를 더 찍어 발행했고 이를 남아있는 일본인들과 친일파들에게 무작정 살포했다.
통화량의 증가는 살인적인 인플레로 이어졌다. 쌀값은 무려 2400%가 뛰었고 조선 민중은 신음했다.
일제는 조선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입히고 떠나간 것이다.

■ 은밀한 로비자금, 조선을 주무르다
돈의 또 다른 용처는 정치자금이었다.
막대한 검은돈이 미군정과 정치계로 흘러들었다.
그러나 그 검은돈이 실체로 들어나는 사건은 극소수였다.
조선인 사업가 김계조는 총독부의 미군상대 로비를 위한 미군을 위한 댄스홀을 만들겠다며 총독부로부터 당시 돈 천만 원을 비자금으로 받았다가 후일 기소된다.
친일파 박흥식은 8월15일 조선군사령부로부터 5000만원을 위로금으로 받은 사실이 드러나 기소된다.
당시 500만원이 광산근로자 6만명의 임금이었다. 즉1인당 월급이 100원이 안되는 상황에서 1000만원, 5000만원이란 거금을 댓가도 없이 뿌린 것이다.
이들은 빙산의 일각, 당시 조선총독부의 검은 돈이 이땅의 새로운 출발을 얼마나 왜곡시켰는가는 지금 짐작도 할 수 없을 정도 일 것이다.

■ 조선총독부 관리들의 무용담
조선총독부 관리들은 8월 15일 이후 저지른 이런 범죄행위로 군정 하에서 조사를 받던 중 미군의 묵인 하에 조선을 탈출하여 일본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들이 자행한 일을 무용담처럼 회고록에서 자랑했다.
그들은 마지막까지 이 땅에 막대한 피해를 남기며 떠난 후 반성은 커녕 자신들은 조선을 위해 일했노라 강변했다.
1945년 일본제국주의 항복 후 미군진주까지 25일간의 공백, 그 사이 조선총독부 최후의 음모를 파헤친다.

※ 이 영상은 2013년 8월 15일 방영된 [광복절 특집 - 조선총독부 최후의 25일] 입니다.

#광복절 #일본 #로비
Category
다큐멘터리 - Documentary
Tags
KBS, 다큐멘터리, doc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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