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처받은 나를 품어준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의 숲
우연일까, 운명일까. 고향의 숲속으로 돌아와 자기만의 집을 짓고 살기를 원했던 여인은 그 집을 시공해 준 우직한 목수와 사랑에 빠졌다. 각각 와일드 플로리스트와 목수로 활동했던 윤용신 씨와 이세일 씨. 이들은 각박한 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자연의 여유를 그리워하며 고향인 해남으로 돌아온 공통점이 있다. 동향의 예술가이면서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작업을 하고 싶었던 두 사람은 마침 같은 결의 꿈을 그리고 있었다. 집짓기를 통해 서로의 상처와 꿈을 이해한 두 사람은 자연스레 부부의 연까지 맺게 되었다. 집이 완공될 무렵 돌집 마당에서 전통식 혼례를 올렸고, 한 명을 위한 아담한 돌집은 예술가 부부의 신혼집이 되었다. 여기에 인생의 중반에 찾아온 행복을 축하하듯, 적지 않은 나이에 소중한 딸 도원 양까지 얻게 되면서 기쁨은 배로 늘었다. 용신 씨가 ‘목신의 숲’이라고 부르는 이곳은 길을 잃었던 고향의 자녀들에게 다시 삶의 방향을 안겨주는 부모와도 같은 자연이 되었다.
한때 삶의 방향성을 찾지 못해 20년의 도시 생활을 접고 쓸쓸하게 고향으로 돌아왔던 용신 씨. 귀향 직후 아버지가 가꾸어놓은 은행나무 숲에서 치유의 시간을 보내면서 비로소 자신의 정체성과 인생의 지향점을 찾게 되었다. 용신 씨는 숲에서 보낸 시간 덕에 다시 인생의 경로를 찾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유달리 나무를 좋아하셨던 용신 씨의 아버지는 다른 이웃들이 고구마나 배추 농사를 지을 때 집 뒤의 야트막한 야산을 일구어 그곳에 무려 2000톨이 넘는 은행나무 씨앗을 심었고, 훗날 거대한 은행나무 숲을 이루기를 꿈꾸었다. 물론, 당신이 그 혜택을 누리기 위함은 아니었다. 무려 30년 가까이 자라야 씨를 맺을 수 있는 수종인 은행나무는 ‘손자 대에 이르러서야 종자를 얻을 수 있는 나무’ 라고 해서 공손수(公孫樹)로 불리기도 한다. 늦게 첫 열매를 맺는 만큼, 1000년의 세월이 지나도 씨앗을 떨어내고 생산을 이어가는 오랜 생명력을 자랑하는 수종이 바로 은행나무다. 아버지가 고른 수종에는 그런 의미가 있었다.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난 후, 씨앗을 심었던 농부 아버지의 혜안은 노랗게 물든 숲이 되어 막내딸 용신 씨를 반겨주었다. 그제야 용신 씨는 자연이 가까웠던 가장 행복했던 유년의 기억을 떠올렸다. 언제나 말없이 자신을 기다려주었던 고향의 자연에서 삶의 해답을 찾은 것이다.
자연을 삶의 터전으로 삼게 되면서 이들에게 생긴 또 다른 변화도 있다. 그녀는 이제 꽃 작업을 할 때도 생태친화적인 방법을 쓰기 위해 노력한다. 해남 지역에서 자라는 다양한 열매와 야생화를 모아 조화롭게 표현한 용신 씨의 야생화 리스(화환)는 비싼 수입 재료를 사용한 것보다 훨씬 생동감 있고 아름답다. 한때 불교미술에 빠져 나뭇조각을 하던 목수였던 세일 씨 역시 친환경 목공작업을 업으로 한다. 어릴 적 고향의 풍경이 그리워 해남으로 돌아왔던 세일 씨. 그의 눈에 가장 처음 들어온 것이 버려진 나무와 잘려나간 목재들이었다. 개발을 위해 잘리고, 버려지는 나무가 안타까워 하나씩 깎아 낸 목재들이 숟가락과 의자, 커피 그라인더가 되었다. 덕분에 버려지고 썩어가던 재료는 잔정 많은 목공의 손에서 섬세한 공예작품으로 재탄생할 수 있었다. 그렇게 부부에게는 각각 ‘와일드 플로리스트’와 ‘그린우드워커’라는 거창하지만 반듯한 이름이 붙었다. 자연이 내어주는 만큼의 재료로 작품활동을 지속하고 숲과 공생하고자 하는 부부의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이제 숲은 부부가 함께 소통하는 기쁨의 공간이면서 자라나는 어린 딸의 놀이터인 동시에 끊임없이 생동하는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다. 그래서 용신 씨와 세일 씨에게 자연은 곧 생활이고 삶이다. 오늘도 부부는 아버지가 남겨주신 위대한 유산, 숲을 거닐며 해남의 자연을 누빈다.
내츄럴 휴먼 다큐 자연의 철학자들 - 아버지의 숲
#자연의철학자들 #은행나무 #숲
우연일까, 운명일까. 고향의 숲속으로 돌아와 자기만의 집을 짓고 살기를 원했던 여인은 그 집을 시공해 준 우직한 목수와 사랑에 빠졌다. 각각 와일드 플로리스트와 목수로 활동했던 윤용신 씨와 이세일 씨. 이들은 각박한 도시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자연의 여유를 그리워하며 고향인 해남으로 돌아온 공통점이 있다. 동향의 예술가이면서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작업을 하고 싶었던 두 사람은 마침 같은 결의 꿈을 그리고 있었다. 집짓기를 통해 서로의 상처와 꿈을 이해한 두 사람은 자연스레 부부의 연까지 맺게 되었다. 집이 완공될 무렵 돌집 마당에서 전통식 혼례를 올렸고, 한 명을 위한 아담한 돌집은 예술가 부부의 신혼집이 되었다. 여기에 인생의 중반에 찾아온 행복을 축하하듯, 적지 않은 나이에 소중한 딸 도원 양까지 얻게 되면서 기쁨은 배로 늘었다. 용신 씨가 ‘목신의 숲’이라고 부르는 이곳은 길을 잃었던 고향의 자녀들에게 다시 삶의 방향을 안겨주는 부모와도 같은 자연이 되었다.
한때 삶의 방향성을 찾지 못해 20년의 도시 생활을 접고 쓸쓸하게 고향으로 돌아왔던 용신 씨. 귀향 직후 아버지가 가꾸어놓은 은행나무 숲에서 치유의 시간을 보내면서 비로소 자신의 정체성과 인생의 지향점을 찾게 되었다. 용신 씨는 숲에서 보낸 시간 덕에 다시 인생의 경로를 찾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유달리 나무를 좋아하셨던 용신 씨의 아버지는 다른 이웃들이 고구마나 배추 농사를 지을 때 집 뒤의 야트막한 야산을 일구어 그곳에 무려 2000톨이 넘는 은행나무 씨앗을 심었고, 훗날 거대한 은행나무 숲을 이루기를 꿈꾸었다. 물론, 당신이 그 혜택을 누리기 위함은 아니었다. 무려 30년 가까이 자라야 씨를 맺을 수 있는 수종인 은행나무는 ‘손자 대에 이르러서야 종자를 얻을 수 있는 나무’ 라고 해서 공손수(公孫樹)로 불리기도 한다. 늦게 첫 열매를 맺는 만큼, 1000년의 세월이 지나도 씨앗을 떨어내고 생산을 이어가는 오랜 생명력을 자랑하는 수종이 바로 은행나무다. 아버지가 고른 수종에는 그런 의미가 있었다.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난 후, 씨앗을 심었던 농부 아버지의 혜안은 노랗게 물든 숲이 되어 막내딸 용신 씨를 반겨주었다. 그제야 용신 씨는 자연이 가까웠던 가장 행복했던 유년의 기억을 떠올렸다. 언제나 말없이 자신을 기다려주었던 고향의 자연에서 삶의 해답을 찾은 것이다.
자연을 삶의 터전으로 삼게 되면서 이들에게 생긴 또 다른 변화도 있다. 그녀는 이제 꽃 작업을 할 때도 생태친화적인 방법을 쓰기 위해 노력한다. 해남 지역에서 자라는 다양한 열매와 야생화를 모아 조화롭게 표현한 용신 씨의 야생화 리스(화환)는 비싼 수입 재료를 사용한 것보다 훨씬 생동감 있고 아름답다. 한때 불교미술에 빠져 나뭇조각을 하던 목수였던 세일 씨 역시 친환경 목공작업을 업으로 한다. 어릴 적 고향의 풍경이 그리워 해남으로 돌아왔던 세일 씨. 그의 눈에 가장 처음 들어온 것이 버려진 나무와 잘려나간 목재들이었다. 개발을 위해 잘리고, 버려지는 나무가 안타까워 하나씩 깎아 낸 목재들이 숟가락과 의자, 커피 그라인더가 되었다. 덕분에 버려지고 썩어가던 재료는 잔정 많은 목공의 손에서 섬세한 공예작품으로 재탄생할 수 있었다. 그렇게 부부에게는 각각 ‘와일드 플로리스트’와 ‘그린우드워커’라는 거창하지만 반듯한 이름이 붙었다. 자연이 내어주는 만큼의 재료로 작품활동을 지속하고 숲과 공생하고자 하는 부부의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이제 숲은 부부가 함께 소통하는 기쁨의 공간이면서 자라나는 어린 딸의 놀이터인 동시에 끊임없이 생동하는 예술적 영감의 원천이다. 그래서 용신 씨와 세일 씨에게 자연은 곧 생활이고 삶이다. 오늘도 부부는 아버지가 남겨주신 위대한 유산, 숲을 거닐며 해남의 자연을 누빈다.
내츄럴 휴먼 다큐 자연의 철학자들 - 아버지의 숲
#자연의철학자들 #은행나무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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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큐멘터리 - Document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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