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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물이 높아지면 대문앞에 바닷물이 왔던 해망동 999번지를 아시나요? (KBS 20150927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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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난민 집단수용소, 해망동 999번지
1950년대 수백여명의 피난민들이 맨손으로 일궈낸 마을, 해망동 피난민촌. 초창기 바닷물이 들어차는 갯벌흙집에서 시작해 1970년대 콘크리트로 보수된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마지막 판자촌’이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골목길이 미로처럼 얽혀 있는 마을은, 축구장만한 넓이에 200여가구가 넘게 살았다. 대부분 한두평짜리 단칸방에 공동화장실을 사용한다.
그런데 이곳이 지난 2000년대 후반 자연재해위험지구로 지정돼 주민들이 60여년 넘게 살았던 마을을 떠나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여름철에 장마와 태풍 등이 겹치면 바닷물이 높아져 침수와 재난이 우려된다는 이유에서다.

■ 한국 근대사 생생한 증언의 공간, 해망동
군산 해망동은 일제 강점기 쌀 수탈의 현장이다. 일본은 1926년 군산내항과 시내를 연결하는 해망굴(근대문화재 제184호)을 뚫고 호남평야에서 나오는 양질의 쌀을 자국으로 실어나르기 시작했다.
또한 6.25전쟁 때에는 미군의 LST 상륙함에 실려 내려온 수많은 피난민들이 첫 번째 기착지였다. 당시 군산은 목포, 속초, 부산과 함께 ‘실향민 4대 도시’로 불렸으며 해망동에는 주로 황해도 사람들이 터를 잡았다.
1960~1970년대 근대화 시절, 해망동은 수산업과 목재업의 번창으로 전성기를 이뤘다. 당시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뱃사람들과 막노동자들에게 이곳은 별다른 기술이나 밑천없이도 성공할 수 있다는 ‘기회의 땅’이었다.

■ 또다시 떠나야 하는 사람들
지난해부터 본격적인 이주정책이 실시되었다. 이미 전체 주민의 80%는 떠나고 십여가구만 남았다. 하루하루 끼니 걱정을 해야하는 빈곤한 노인들이 대부분이다. 군산시에서는 당초 지난해 예정되었던 철거를 올해 상반기로 연기한 상태다.
지난 60여년동안 마을을 이루며 함께 살았던 실향민들이 또다시 뿔뿔이 흩어지고 있다. 운좋으면 다른 피난민촌으로 이사가거나, 아니면 도시의 자식들 집, 또는 요양병원 등으로 사라진다.
젊었을 땐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던 곳이었지만 이제는 떠날 수가 없다. 이사를 가도 매일 이곳을 찾는 사람들, 하루하루 노인정으로 출근하는 노인들. 이들의 마음속에는 ‘내고향, 해망동’이 있다.

■ 해망동 999번지, 새로운 시작
올해 말이면 해망동 지역은 완전히 철거되고 새로운 ‘자연공원’을 위한 공사가 시작된다. 일제 강점기부터 시작된 한국 근현대사의 상징적 공간이 사라짐으로써 20세기 굴곡의 역사는 비로소 일단락된다.
그러나 삶은 계속된다. 평생 배운게 갯일밖에 없는 사람들은 철거된 마을을 바라보며 매일 배에 오를 것이다. 바닷가에서 조개를 채취할 때 가장 평안한 행복, 살아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또다른 역사를 쓰려는 해망동 사람들, 이들의 고향은 바다였다.

※ 이 영상은 2015년 9월 27일 방영된 [특집 - 해망동 황해도 사람들] 입니다.

#해망동 #피난처 #다큐
Category
다큐멘터리 - Documentary
Tags
KBS, 다큐멘터리, doc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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