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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장혜령)이 읽는 조용미의 '초록을 말하다' [시 읽는 토요일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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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을 말하다 / 조용미

초록이 검은색과 본질적으로 같은 색이라는 걸 알
게 된 것이 언제였을까
검은색의 유현함에 사로잡혀 이리저리 검은색 지명
을 찾아 떠돌았던 한때 초록은
그저 내게 밝음 쪽으로 기울어진 어스름이거나 환
희의 다른 이름일 뿐이었는데

한 그루 나무가 일구어내는 그림자와 빛의 동선과
보름 주기로 달라지는 나뭇잎의 섬세한 음영을 통해
초록에 천착하게 된 것은 검은색의 탐구 뒤에 온,
어쩌면 검은색을 통해 들어간 또 다른 방
그 방에서 초록 물이 들지 않고도 여러 초록을 분
별할 수 있었던 건 통증이 조금씩 줄어들었기 때문

초록의 여러 층위를 발견하게 되면서 몸은 느리게
회복되었고 탐구가 게을러지면 다시 아팠다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처럼 꺼내어도 꺼내어도 새
로운 다른 초록이 나오는,

결국은 더 갈데없는 미세한 초록과 조우하게 되었
을 때의 기쁨이란

초록은 문이 너무 많아 그 사각의 틀 안으로 거듭
들어가기 위해선 때로
눈을 감고 색의 채도나 명도가 아닌 초록의 극세한
소리로 분별해야 한다는 것.
흑이 내게 초륵을 보냈던 것이라면 초록은 또 어떤
색으로 들어가는 문을 살며시 열어줄 건지

늦은 사랑의 깨달음 같은, 폭우와 초록과 검은색의
뒤엉킴이 한꺼번에 찾아드는 우기의 이름 아침
몸의 어느 수장고에 보관해두어야 할까
내가 맛보았던 초록의 모든 화학적 침적을, 오랜
시간 통증과 함께 작성했던 초록의 층서표들을
기획: 박유리, 제작: 한겨레TV, 낭송: 준(장혜령), 영상편집: 윤지은, 영상: 이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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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채널 - TV Chann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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