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에서 열린 제45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한반도의 고대문명 가야를 대표하는 연속유산 가야고분군이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2013년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된 후, 10년만에 이룬 쾌거였다.
세계유산에 등재된 연속유산 가야고분군은 가야의 각 정치체에 따라 7곳으로 구분되는데, 김해 대성동 고분군, 함안 말이산 고분군, 합천 옥전 고분군, 고령 지산동 고분군, 고성 송학동 고분군,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이 있다. 세계유산에 등재된 일곱 곳의 가야고분군 외에, 가야고분이 발견된 장소는 780여 곳, 발굴조사 중이거나 아직 정비되지 않은 고분까지 합치면, 수천 기에 이른다.
사라진 가야문명의 존재를 알려주는 가장 특별한 증거는 가야의 왕과 지배층이 묻힌 가야고분군이다. 고분을 만드는 방식이나 죽은 사람을 매장하는 방법, 고분에서 나온 인골과 유물들까지... 고분에 관한 모든 것은 가야인의 삶을 이해하는 밑거름이 된다. 정치체는 달랐지만 가야라는 이름 아래 매장풍습을 공유했고, 톡특한 장례문화도 발전시켰음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가야인의 생활상과 철학을 밝혀내는 것 또한 우리 앞에 놓인 숙제다.
김세기 교수는 평생 가야고분을 연구해온 고고학자다. 1977년 12월. 당시 대학생이었던 그는 한 달동안 가야고분 발굴에 참여하면서 잊지못할 경험을 하게 된다. 가야고분을 통해 순장을 발견한 것이다. 가야인들은 죽음 이후 또다른 세계가 있을거라 믿었고, 살아생전 누리던 부와 권력을 가져가고자 자신이 거느리던 사람들을 무덤에 함께 묻었다. 가야는 누군가의 생명을 결정하는 권력이 정당화되는 사회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인골을 통해 역사의 답을 찾아가는 이도 있다. 동아대학교 김재현 교수는 가야고분에서 나온 인골을 분석하며 가야사를 밝혀 나가고 있다. 대성동 고분군 57호분에서는 금관가야 왕으로 추정되는 무덤의 주인공 외에 순장자 세 명이 매장되어 있었다. 창과 칼이 함께 나왔지만, 인골을 조사한 결과, 뜻밖에도 순장자들은 출산까지 한 여성으로 밝혀졌다.
가야고분 발굴이 시작된 시기는 일제 강점기였다. 일본이 가야고분 발굴을 시작한 것은 조선 통치의 당위성을 입증하기 위해서였고, 그 과정에서 발굴지에서 나온 상당수의 유물이 일본으로 건너갔다. 조선 통치의 근거를 찾지 못했던 일본은 고분발굴을 중단한다. 2024년 현재, 가야 유적 곳곳에서 발굴이 진행중이다. 창녕과 합천, 남원에서는 고분 발굴이, 고령에서는 왕이 살았던 궁성지 발굴이, 김해 봉황리와 함안에서는 생활지를 발굴하고 있다. 고분과 궁성지, 산성과 성곽, 생활터전까지 발굴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고, 이를 통한 가야사 복원도 계속되고 있다.
세계유산에 등재된 연속유산 가야고분군은 가야의 각 정치체에 따라 7곳으로 구분되는데, 김해 대성동 고분군, 함안 말이산 고분군, 합천 옥전 고분군, 고령 지산동 고분군, 고성 송학동 고분군,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이 있다. 세계유산에 등재된 일곱 곳의 가야고분군 외에, 가야고분이 발견된 장소는 780여 곳, 발굴조사 중이거나 아직 정비되지 않은 고분까지 합치면, 수천 기에 이른다.
사라진 가야문명의 존재를 알려주는 가장 특별한 증거는 가야의 왕과 지배층이 묻힌 가야고분군이다. 고분을 만드는 방식이나 죽은 사람을 매장하는 방법, 고분에서 나온 인골과 유물들까지... 고분에 관한 모든 것은 가야인의 삶을 이해하는 밑거름이 된다. 정치체는 달랐지만 가야라는 이름 아래 매장풍습을 공유했고, 톡특한 장례문화도 발전시켰음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가야인의 생활상과 철학을 밝혀내는 것 또한 우리 앞에 놓인 숙제다.
김세기 교수는 평생 가야고분을 연구해온 고고학자다. 1977년 12월. 당시 대학생이었던 그는 한 달동안 가야고분 발굴에 참여하면서 잊지못할 경험을 하게 된다. 가야고분을 통해 순장을 발견한 것이다. 가야인들은 죽음 이후 또다른 세계가 있을거라 믿었고, 살아생전 누리던 부와 권력을 가져가고자 자신이 거느리던 사람들을 무덤에 함께 묻었다. 가야는 누군가의 생명을 결정하는 권력이 정당화되는 사회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
인골을 통해 역사의 답을 찾아가는 이도 있다. 동아대학교 김재현 교수는 가야고분에서 나온 인골을 분석하며 가야사를 밝혀 나가고 있다. 대성동 고분군 57호분에서는 금관가야 왕으로 추정되는 무덤의 주인공 외에 순장자 세 명이 매장되어 있었다. 창과 칼이 함께 나왔지만, 인골을 조사한 결과, 뜻밖에도 순장자들은 출산까지 한 여성으로 밝혀졌다.
가야고분 발굴이 시작된 시기는 일제 강점기였다. 일본이 가야고분 발굴을 시작한 것은 조선 통치의 당위성을 입증하기 위해서였고, 그 과정에서 발굴지에서 나온 상당수의 유물이 일본으로 건너갔다. 조선 통치의 근거를 찾지 못했던 일본은 고분발굴을 중단한다. 2024년 현재, 가야 유적 곳곳에서 발굴이 진행중이다. 창녕과 합천, 남원에서는 고분 발굴이, 고령에서는 왕이 살았던 궁성지 발굴이, 김해 봉황리와 함안에서는 생활지를 발굴하고 있다. 고분과 궁성지, 산성과 성곽, 생활터전까지 발굴은 지금도 진행되고 있고, 이를 통한 가야사 복원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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