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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한국전쟁에 일본을 활용했다? 미국 정부의 극비문서를 통해 알아 본 미국과 일본의 관계 ㅣ KBS 다큐인사이트 전쟁과 동맹 2부. 밀약 23.06.29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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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그리고 적. 한국 전쟁의 뒤엔 적을 동지로 만든 미국의 밀약이 있었다.

한국 전쟁 당시 미국의 후방 기지가 되었던 일본에 초점을 맞춰 본다. 태평양 전쟁의 승전국인 미국과 패전국인 일본은 어떻게 다시 동맹을 맺게 되었을까? 패전 후 후유증이 심했던 일본은 한국 전쟁이라는 기회를 어떻게 이용했을까? 제작진이 발굴한 미국 정부의 극비문서를 통해 비극의 역사인 한국 전쟁 뒤에 숨겨진 비밀의 약속이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한다.

∎한국 전쟁에 참전한 일본인, 그리고 ‘TOP SECRET(일급비밀)’
1950년 당시 일본 곳곳에 패전국의 점령군으로 미군들이 주둔했다. 몇몇 일본인들은 돈을 벌기 위해 미군 캠프에서 일했다. 이노우에 준이치도 그곳의 평범한 식당 주방장이었다. 현재 70세가 다 된 그의 아들은 뒤늦게야 아버지가 한국 전쟁에 참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미군들은 그 사실을 철저하게 숨기기 위해 그들을 심문했다. 결국 그는 비밀문서에 지장을 찍고 죽는 날까지 한국에서의 일을 발설하지 않았다. 미국은 어째서 한국 전쟁에 일본을 활용했던 것일까? 그 사실은 어째서 철저한 비밀로 지켜져야 했던 것일까?

∎인천상륙작전의 숨은 조력자
패퇴를 거듭하던 연합군의 상황을 반전시킨 인천상륙작전. 그곳에도 일본인이 동원됐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한반도의 지형에 정통했던 그들은 옛 자료를 토대로 등대와 기뢰의 정보가 담긴 전략지도를 제작했다. 인천이 작전지역으로 적절치 않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맥아더는 일본의 전 장교들의 조언을 받아들여 작전을 실행했다. 비공식적이지만 공공연했던 일본의 전쟁 참여. 하지만 미국과 일본 어느 쪽도 공식적으로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패전국 일본의 Go Home Quickly
1951년 9월 8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이곳에 미국, 프랑스, 영국, 호주, 필리핀 등 연합국 관계자와 일본의 요시다 시게루 총리가 모였다. 그렇게 강화조약이 체결되고 1년 뒤 발효됨으로써 일본은 독립했다. 패전국, 전범국의 오명을 쓰고 있던 일본이 한국 전쟁이 발발한 지 1년 만에 공산주의를 배척하고, 평화를 지향하는 주권국이자 독립국으로 국제사회에 당당히 재등장한 것이다. 그들에게 한국 전쟁은 어떤 의미였을까? 서로에게 총을 겨누던 두 나라가 같은 편이 되어 싸우며 느낀 것은 무엇이었을까?
Category
다큐멘터리 - Documentary
Tags
KBS, 다큐멘터리, doc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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