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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광의 '깊은 계곡 응달의 당신'[시 읽는 토요일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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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계곡 응달의 당신 / 이영광
  
주말 등산객들을 피해 공비처럼 없는 길로 나아--가다가
삼부능선 경사면에 표고마냥 돋은 움막 앞에서
썩어가는 그것을 만났다 나는 놀라지 않았다 그것도
놀라지 않았다 몸이 있어 있을 수 있는 광경이었기에
이미 짐승들이 뜯고 찢어 너덜너덜한 그것 곁에 찌그러진 양푼 곁에
불 꺼진 스탠드처럼 어둑어둑 소나무 그늘이 드리웠기에
나는 쭈그려 담배를 피우며 아, 여기는 저승 같네 하면서도
정시하진 못했다 아직 시체와 눈 맞는 인간이 되어선
안 되었다 그것이 자기를 잊고 벌떡 일어나선 안 되었다
사실 파리는 왱왱거리고 구더기들은 들끓었다 구더기들은
다시 파리가 되어 피를 빨고 알을 슬어 헐렁한 음부나
가슴 밑에 또 구더기를 키우고 있을 터였다 그러면 저것은
죽은 것인가? 그렇다고 대답했는데 그것이 고개를 약간
갸웃했다 나는 이해했다, 저 몸은 이 산의 압도적인 응달 안에서
개울물과 함께, 독경 같은 새소리와 함께 뒤척이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 검은 흙과 푸른 잎에 숨 쉬듯 젖고 있지 않은가
금방도 꺾였던 무릎을 슬며시 폈다, 이것은 산 것인가?
나는 답하지 못했다 고개가 또 혼자 갸우뚱했다
생이 한 번 죽음이 한 번 담겼다 떠난 빈 그릇으로서
이것의 마른 몸은 지금 축축하고 혈색도 체취도 극악하지만
죽은 그는 다만 꿋꿋이 죽어가고 있다 무언가가 아직
건드리고 있다, 검정파리와 구더기와 송장벌레와 더불어
깊은 계곡 응달의 당신은 잠투정을 하는 것 같다 귀가 떨어졌다
당신의 뺨은 문드러졌다 내장이 흘러나왔다 놀랍게도
당신의 한쪽 팔은 저만치 묵은 낙엽 위를 혼자 기어가고 있다
그것이 닿는 곳까지가 몸일 것이다 끊겼다 이어지는
새 울음과 근육질의 바람이 이룩하는 응달까지가 당신의
사후일 것이다 고통과 인연과 불멸의 혼을 폐기하고 순결히
몸은 몸만으로 꿈틀댄다 제가 몸임을 기억하기 위해 부릅뜨고
구멍이 되어가는 두 눈을, 눈물의 벌레들을 곁눈질로
보았다 그것은 끝내 벌떡 일어나지 않았지만
죽음 뒤에도 요동하는 요람이 있다 생은 생을 끝까지 만져준다
나는 북받치는 인간으로 돌아와 왈칵 왈칵 토했다 아카시아
숲길 하나가 뿌옇게 터져 있다 자연이 유령의 손으로 염하는
자연을 또 한 번 본다 이 봄은 울음 잦고 길할 것이다
기획: 박유리,
제작: 한겨레TV,
낭송: 이영광,
영상편집: 위준영,
영상: 이경주
Category
TV 채널 - TV Chann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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