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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지가 읽는 최금진의 '서울에서 살아남기-대학 새내기들을 위하여' [시 읽는 토요일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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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살아남기 /최금진
-대학 새내기들을 위하여
가게에서 물건을 사거나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통성명을 할 때
돌아와서 후회하지 않으려면 일단 무조건 거만해야 한다
엔젤이라고 발음하는 너의 콩글리시에는 천사가 살지 않는다
서울에 천사가 있다면 그건 CCTV일 것이다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자취방으로 돌아가는 늦은 밤엔
최대한 예쁘게 포즈를 잡아도 좋다, 경찰이 아니라 CCTV가 너를 지킨다
젊어 고생은 사서 하는 것인가, 그렇다
고생은 너의 출세를 위해 가치 있는 것인가, 아니다
항복, 할복, 항복, 할복,
어떤 것이 행복을 위해 더 명예롭고 윤리적인가
학교를 그만둔다 해도 나무랄 사람은 시골에 계신 부모님뿐이고
잉여인간, 너 같은 애들은 값싼 정부미처럼 창고에 넘친다
교양시간에 배운 플라톤을 성공한 사회사업가라고 말해도 좋다
1960년 4월혁명 이후에 서울에도 봄은 온다
대기업에 취직을 하든 낙오자가 되든 그것은 너의 자유
서울에 개나리가 지천으로 핀다고 해서
그게 백합과인지 나리꽃과인지를 고민하는 것은 넌센스이듯
부모의 능력이 어째서 자식의 우울증이 되는지는 어떤 연구도 통계도 없다
아프면 전기장판 깔고 눕고,
아스피린 따위의 값싼 약이나 먹고 자라
전기세는 늙고 병든 네 부모의 몫이니까 마음껏 쓰고
성적욕망이라고 부르기엔 왠지 거룩한 연애 혹은 사랑의 감정이
가스 배관선을 타고 기어오르는 도둑놈처럼 방문을 두드릴 때
다 줘버려도 괜찮다고 생각한다면
인생 한방에 가는 거다
도를 아느냐고 묻는 사람은 그래도 도를 믿는 사람이지만
도를 정말로 실천하며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자는 사기꾼
무조건 거만해야 한다, 거만하지 않으면
자신만 거만하지 않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항복, 할복, 항복, 할복, 모든 선택은 성적순이며
지하철역에서 무장공비처럼 누워 자는 사내들도 한때는
전투적으로 국가 교육과정을 이수한 자들
너의 황달이 든 얼굴과
고향에 지천으로 피던 민들레꽃이 심리적으로 일치할 때
결핍을 상징하는 그 노란색이 아지랑이처럼 자꾸 어른거릴 때
게임아웃, 넌 끝난 거다
1960년 4월혁명 이후, 서울에도 봄은 오지만
민주주의가 꼭 민주적이란 뜻은 아니다
대학은 나와야 사람 구실한다고, 네 늙은 아비는 울었다
그러나 네게도 실업자가 될 자유는 있다
기획: 이문영, 제작: 한겨레TV, 낭송: 임경지, 영상편집: 윤지은, 영상: 이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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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채널 - TV Chann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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