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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성훈도 저고, 아키야마도 저예요” 17년 전, 한국과 일본을 오갈 수밖에 없었던 한 재일교포 이야기 (KBS 20051113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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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스페셜 '추성훈 혹은 아키야마 이야기'

▶ k-1선수가 된 추성훈, 짝사랑하던 조국을 다시 찾다.
지난해 격투기 대회인 K-1에 데뷔한 아키야마 요시히로. 한국명 추성훈.
한국에서 4번째로 열린 종합격투기대회 [히어로즈]에서 3년만에 그는 ‘아키야마 요시히로’라는 일본명 대신 한국명 ‘추성훈’으로, 한국 대표선수가 되어 그토록 좋아하던 고국 땅에 다시 돌아왔다.
일본에서의 훈련모습, 준비과정에서부터 입국, 경기 모습까지 밀착 취재했다.

▶ 추성훈, 그는 누구인가.
재일교포 4세로 일본에서 나고 자란 추성훈.
촉망받는 유도선수였던 그는 대학을 졸업하자 한국행을 택했다.
일본 귀화를 전제로한 실업팀의 입단 제의를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국적을 포기하지 않고 한국인으로 선수생활을 계속하는 것, 나아가 한국 국가대표 선수로 세계무대에 당당히 서는 것은 그의 오랜 꿈이었다.
일본의 화려한 유도기술에 한국식 힘의 유도를 접목시켜 그의 실력은 급성장했고, 한 때 태극마크를 달고 국제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추성훈은 올림픽을 비롯한 중요한 국제대회에는 결코 출전할 수 없었다. 국내 유도계의 잘못된 관행과 텃세가 번번이 그를 가로막았던 것이다.

▶ 오직 유도를 위한 선택, 귀화 - 그는 왜 귀화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나.
추성훈은 한국에선 도저히 국가대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귀화를 결심, 4년여의 한국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일본으로 돌아간다. 2001년 귀화를 한 그는 일본 최고 권위인 강도관 배 유도대회, 일본 국제 유도 대회, 파리 국제 유도 대회에서 우승하며 당대 최강의 유도가임을 증명했다.
그리고 마침내 2002년 아시안게임 유도 81Kg에서 한국 선수와의 결승전에서 우승, 일본에 금메달을 안겨줬다. 그러나 국내 여론은 우리 것이 될 수 있었던 메달을 일본에 헌납한 것이라는 유도계를 탓하는 논란으로 잠시 시끄러웠을 뿐, 어느 누구도 ‘추성훈’이 왜 ‘아키야마 요시히로’가 되는 길을 선택했는지 주목하지 않았다.

▶ 대를 이어온 태극마크의 꿈
추성훈의 꿈은 아버지대로부터 내려온다.
아버지 추계이씨 역시 유망한 유도선수였다.
1972년 국내 전국체전에 재일 동포 대표로 출전해 우승했고, 이듬해인 73년엔 한국 국가대표 선발전에 나섰지만 부상으로 아쉽게 탈락해 태극마크의 꿈을 접어야 했다.
자신의 못 다한 꿈을 아들이 이뤄주기를 간절히 바랬던 아버지. 하지만 그는 2001년 가을, 아들의 일본 귀화를 묵묵히 지켜봐야 했다.

▶ 아키야마 요시히로,
그는 지금도 일본에서 ‘추성훈’이라 불리고 있다.
재일 교포들은 대부분 두 개의 이름을 갖고 있다. 본명과 통명. 한국식 이름인 본명에다 일본식으로 발음한 통명을 갖는 것이다. 일본에서 태어나, 살기 위해 일본식 발음의 이름을 갖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 그러나 본명은 한국 사람이고, 통명은 일본 사람이라는 우리의 모순된 생각은 한국인 ‘추성훈’을 일본인으로 만들고 있다.
‘아키야마 요시히로’는 ‘추성훈’의 일본식 발음일 뿐, 그의 이름은 귀화 전에도, 지금도 여전히 ‘추성훈’이다.

▶ 재일교포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현재 재일 교포 수는 약 70만 명. 세대가 거듭될수록 귀화하는 사람의 숫자는 늘고 있지만 귀화한다고 완전히 일본인이 될 수 없듯이,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사실 또한 지울 수 없다.
추성훈에서 아키야마 요시히로로, 다시 추성훈으로, 한국인이자 동시에 일본인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는 그의 삶의 궤적은 오늘을 살아가는 재일 교포들의 초상이기도 하다.

#추성훈 #아키야마 #유도
Category
다큐멘터리 - Documentary
Tags
KBS, 다큐멘터리, doc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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