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은 오랜 세월에 걸쳐 눈물겹게 지켜온 맛의 유산이다.
우리의 토양과 기후, 우리의 입맛에 적응하며
이 땅에서 강인하게 버텨낸 생명이자
대대로 이어온 삶의 희로애락이 새겨져 있는 역사다.
삶이 달라지고 환경이 바뀌는 속에서도 꿋꿋하게 토종을 지키는 사람들.
그들의 토종 밥상을 만나본다.
■ 토종 천마를 지키는 사람들 -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안성면
백두대간 중심부에 위치한 덕유산. 그 산자락 해발 400미터 고지에 터를 잡고 사는 무주군 안성면 사람들에게 토종 천마는 대대로 삶을 지탱해 준 기둥이었다. 토종 천마는 '동의보감'에도 기록된 약재로, 이 마을 사람들은 몇십 년 전까지도 덕유산에서 천마를 캐 생계를 꾸렸다. 남획으로 토종 천마의 씨가 말라가자 30여 년 전부터는 토종 천마를 밭작물로 키우고 있다. 천마 농사는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높은 산에서 자생하는 천마는 잎이 없어 광합성도 하지 못한 채 땅속에서 참나무에 기생해 자라는 덩이줄기다. 그러다 보니 재배법부터가 독특하다. 밭 전체에 일정한 크기로 자른 참나무를 묻은 뒤 나무 사이에 버섯균과 종자마를 넣는데, 버섯균이 죽일까 봐 농약 한번 치지 못한다. 오로지 하늘만 쳐다보며 비가 오면 배수로를 내주고 날씨가 덥거나 추우면 볏짚을 덮어주며 2년을 기다려야 한다. 작황은 수확할 때 땅을 파헤쳐봐야 확인할 수 있으니 마음을 비우지 않고서는 지을 수 없는 농사다.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마을 사람들에게 토종 천마는 선조들의 땀이요 눈물이고, 자신들마저 포기하면 그 맥이 끊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된 농사일에서 유일한 낙은 밭작물이 된 뒤 풍성해진 토종 천마 음식들이다. 삼겹살과 함께 구워 먹는 토종천마삼겹살은 수확의 고단함을 녹여주는 새참이다. 토종천마생채와 겉절이는 수확 철에만 맛볼 수 있는 별미. 토종 천마는 냉장고에서도 장기간의 저장이 어려워 수확 이후 보름간만 생으로 먹을 수 있다. 어머니의 품처럼 넉넉한 덕유산이 내어주는 또 다른 토종인 귀한 버섯들과 함께 끓여내면 이만한 보양식이 없다. 토종 천마를 지키는 농부들의 꿋꿋함과 아낙들의 정성이 함께 차려내는 토종천마밥상을 만난다.
■ 그녀의 밭은 토종의 방주 –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인계면
순창과 임실 사이에 있는 깊은 산간마을인 탑리. 이 마을에서 30여 년째 토종 농사를 짓는 여성 농부가 있다. 이득자 씨(54세).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던 득자 씨는 외진 마을로 시집와 토종 작물을 먹으며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다고 한다. 두 아이도 우리 것을 먹고 잘 자랐다. 직접 몸으로 체험한 토종의 힘. 6000여 평에 이르는 그녀의 밭은 마치 토종의 방주와도 같다. 순전히 토종 씨앗을 얻기 위해 키우는 작물도 다양하다. 요즘 세상에 보기 힘든 목화며 박, 수세미 등. 굽은 소나무가 선산을 지키듯 산골 아낙이 사라져가는 토종을 지키고 있다.
그녀가 차려내는 토종 밥상에는 이 땅에서 살아온 이들의 삶도 풍성하게 담겨있다. 이제는 세상을 떠난 이웃 할머니가 건네준 토종 들깨와 시어머니에게 대물림한 토종 토란으로 끓이는 들깨토란탕. 대대로 이 지역 사람들이 명절 때 먹던 귀한 음식으로, 예전에는 집마다 그 씨앗들을 왕겨로 덮어가며 신줏단지처럼 대를 물렸다고 한다. 이렇게 특별한 사연이 담긴 토종 씨앗만 200여 종을 모은 득자 씨. 건강한 토종 음식 덕분에 장수한다며 은근히 며느리를 칭찬하는 94세의 시어머니와 남편의 지원이 큰 힘이 됐다. 남편은 유기농으로 짓는 토종 농사가 힘들어 자신이 죽게 생겼다고 투덜거리면서도 중장비 기사로 일해 번 돈으로 아내에게 밭을 사주었다. 그런 남편을 위해 자신이 직접 병아리를 부화시켜 키운 토종 오골계에 서리태, 강낭콩 등 각종 토종 콩을 듬뿍 넣어 토종오골계백숙을 끓이는 득자 씨. 말보다 진한 사랑과 고마움의 표현이다. 시어머니를 위해서는 요즘 보기 힘들다는 토종 물고구마를 준비하고, 식후 입가심 음식으로는 그 모양과 색깔이 제각각인 토종 과일이 등장한다. 산골 아낙이 차려내는 토종의 향연을 만나본다.
■ ‘토종 미꾸리’의 귀환 -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
잘 정비된 경기도 양평의 한 농촌 마을. 이런 발전 속에서 잃어버린 맛은 무엇일까. 8년 전부터 이 마을의 논에서 토종 미꾸리를 친환경적으로 양식하고 있는 조규만 씨(70세). 토종 미꾸리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미꾸라지와 비슷하지만 별개의 어종으로, 자세히 보면 모양도 다르고 맛에도 차이가 있다. 추어탕 하면 미꾸라지부터 떠올리지만, 더 담백하고 깊은맛을 내는 것은 토종 미꾸리다. 토종 미꾸리의 서식지는 논두렁 사이에 있는 농수로나 작은 하천 등 진흙과 수초가 많은 곳. 하지만 1980년대 경지정리와 함께 농수로까지 시멘트로 정비되자 자연에서 사라졌다. 그 결과 지금은 외국산이 시장의 95%를 차지한 상황. 그래서 마을 사람들에게 토종 미꾸리의 귀환은 더없이 반갑다.
조규만 씨가 토종 미꾸리를 들고 이웃을 찾는 날이면 함성이 터져 나온다. 이 마을의 내로라하는 음식 고수인 김정숙 씨(80세)는 호박잎을 따서 능숙한 솜씨로 토종 미꾸리를 손질한 뒤 곧바로 밭으로 달려 나간다. 스무살에 시집와 60년 동안 씨를 받아 가며 키워온 구수한 토종 조선파가 들어가야 토종 미꾸리도 제맛을 내기 때문이다. 마을의 남자들은 신이 나서 미꾸리를 대파에 넣어 굽는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미꾸리를 잡아 구워 먹었던 추억의 맛이 늘 그리웠다. 양평에서는 고추장과 된장을 푼 국물에 토종 미꾸리를 통째로 넣어 추어탕을 끓이는 것이 특징. 먹을거리가 귀했던 시절, 이 마을 사람들은 얼큰한 미꾸리 추어탕으로 피로를 풀고 한겨울을 무난하게 날 수 있는 힘을 얻었다고 한다. 간장과 고춧가루를 넣어 짭조름하고 매콤하게 조린 토종 미꾸리 조림은 아이들도 좋아하는 밥도둑이었다. 추억이 있어 더욱 특별한 토종 미꾸리 밥상을 만나본다.
※ 이 영상은 2024년 11월 07일 방영된
[한국인의 밥상 - 대를 이어온 토종, 세월의 맛을 품다]입니다.
#천마 #미꾸리 #토종밥상 #한국인의밥상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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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토양과 기후, 우리의 입맛에 적응하며
이 땅에서 강인하게 버텨낸 생명이자
대대로 이어온 삶의 희로애락이 새겨져 있는 역사다.
삶이 달라지고 환경이 바뀌는 속에서도 꿋꿋하게 토종을 지키는 사람들.
그들의 토종 밥상을 만나본다.
■ 토종 천마를 지키는 사람들 -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안성면
백두대간 중심부에 위치한 덕유산. 그 산자락 해발 400미터 고지에 터를 잡고 사는 무주군 안성면 사람들에게 토종 천마는 대대로 삶을 지탱해 준 기둥이었다. 토종 천마는 '동의보감'에도 기록된 약재로, 이 마을 사람들은 몇십 년 전까지도 덕유산에서 천마를 캐 생계를 꾸렸다. 남획으로 토종 천마의 씨가 말라가자 30여 년 전부터는 토종 천마를 밭작물로 키우고 있다. 천마 농사는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높은 산에서 자생하는 천마는 잎이 없어 광합성도 하지 못한 채 땅속에서 참나무에 기생해 자라는 덩이줄기다. 그러다 보니 재배법부터가 독특하다. 밭 전체에 일정한 크기로 자른 참나무를 묻은 뒤 나무 사이에 버섯균과 종자마를 넣는데, 버섯균이 죽일까 봐 농약 한번 치지 못한다. 오로지 하늘만 쳐다보며 비가 오면 배수로를 내주고 날씨가 덥거나 추우면 볏짚을 덮어주며 2년을 기다려야 한다. 작황은 수확할 때 땅을 파헤쳐봐야 확인할 수 있으니 마음을 비우지 않고서는 지을 수 없는 농사다.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마을 사람들에게 토종 천마는 선조들의 땀이요 눈물이고, 자신들마저 포기하면 그 맥이 끊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된 농사일에서 유일한 낙은 밭작물이 된 뒤 풍성해진 토종 천마 음식들이다. 삼겹살과 함께 구워 먹는 토종천마삼겹살은 수확의 고단함을 녹여주는 새참이다. 토종천마생채와 겉절이는 수확 철에만 맛볼 수 있는 별미. 토종 천마는 냉장고에서도 장기간의 저장이 어려워 수확 이후 보름간만 생으로 먹을 수 있다. 어머니의 품처럼 넉넉한 덕유산이 내어주는 또 다른 토종인 귀한 버섯들과 함께 끓여내면 이만한 보양식이 없다. 토종 천마를 지키는 농부들의 꿋꿋함과 아낙들의 정성이 함께 차려내는 토종천마밥상을 만난다.
■ 그녀의 밭은 토종의 방주 –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인계면
순창과 임실 사이에 있는 깊은 산간마을인 탑리. 이 마을에서 30여 년째 토종 농사를 짓는 여성 농부가 있다. 이득자 씨(54세).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던 득자 씨는 외진 마을로 시집와 토종 작물을 먹으며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다고 한다. 두 아이도 우리 것을 먹고 잘 자랐다. 직접 몸으로 체험한 토종의 힘. 6000여 평에 이르는 그녀의 밭은 마치 토종의 방주와도 같다. 순전히 토종 씨앗을 얻기 위해 키우는 작물도 다양하다. 요즘 세상에 보기 힘든 목화며 박, 수세미 등. 굽은 소나무가 선산을 지키듯 산골 아낙이 사라져가는 토종을 지키고 있다.
그녀가 차려내는 토종 밥상에는 이 땅에서 살아온 이들의 삶도 풍성하게 담겨있다. 이제는 세상을 떠난 이웃 할머니가 건네준 토종 들깨와 시어머니에게 대물림한 토종 토란으로 끓이는 들깨토란탕. 대대로 이 지역 사람들이 명절 때 먹던 귀한 음식으로, 예전에는 집마다 그 씨앗들을 왕겨로 덮어가며 신줏단지처럼 대를 물렸다고 한다. 이렇게 특별한 사연이 담긴 토종 씨앗만 200여 종을 모은 득자 씨. 건강한 토종 음식 덕분에 장수한다며 은근히 며느리를 칭찬하는 94세의 시어머니와 남편의 지원이 큰 힘이 됐다. 남편은 유기농으로 짓는 토종 농사가 힘들어 자신이 죽게 생겼다고 투덜거리면서도 중장비 기사로 일해 번 돈으로 아내에게 밭을 사주었다. 그런 남편을 위해 자신이 직접 병아리를 부화시켜 키운 토종 오골계에 서리태, 강낭콩 등 각종 토종 콩을 듬뿍 넣어 토종오골계백숙을 끓이는 득자 씨. 말보다 진한 사랑과 고마움의 표현이다. 시어머니를 위해서는 요즘 보기 힘들다는 토종 물고구마를 준비하고, 식후 입가심 음식으로는 그 모양과 색깔이 제각각인 토종 과일이 등장한다. 산골 아낙이 차려내는 토종의 향연을 만나본다.
■ ‘토종 미꾸리’의 귀환 -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
잘 정비된 경기도 양평의 한 농촌 마을. 이런 발전 속에서 잃어버린 맛은 무엇일까. 8년 전부터 이 마을의 논에서 토종 미꾸리를 친환경적으로 양식하고 있는 조규만 씨(70세). 토종 미꾸리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미꾸라지와 비슷하지만 별개의 어종으로, 자세히 보면 모양도 다르고 맛에도 차이가 있다. 추어탕 하면 미꾸라지부터 떠올리지만, 더 담백하고 깊은맛을 내는 것은 토종 미꾸리다. 토종 미꾸리의 서식지는 논두렁 사이에 있는 농수로나 작은 하천 등 진흙과 수초가 많은 곳. 하지만 1980년대 경지정리와 함께 농수로까지 시멘트로 정비되자 자연에서 사라졌다. 그 결과 지금은 외국산이 시장의 95%를 차지한 상황. 그래서 마을 사람들에게 토종 미꾸리의 귀환은 더없이 반갑다.
조규만 씨가 토종 미꾸리를 들고 이웃을 찾는 날이면 함성이 터져 나온다. 이 마을의 내로라하는 음식 고수인 김정숙 씨(80세)는 호박잎을 따서 능숙한 솜씨로 토종 미꾸리를 손질한 뒤 곧바로 밭으로 달려 나간다. 스무살에 시집와 60년 동안 씨를 받아 가며 키워온 구수한 토종 조선파가 들어가야 토종 미꾸리도 제맛을 내기 때문이다. 마을의 남자들은 신이 나서 미꾸리를 대파에 넣어 굽는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미꾸리를 잡아 구워 먹었던 추억의 맛이 늘 그리웠다. 양평에서는 고추장과 된장을 푼 국물에 토종 미꾸리를 통째로 넣어 추어탕을 끓이는 것이 특징. 먹을거리가 귀했던 시절, 이 마을 사람들은 얼큰한 미꾸리 추어탕으로 피로를 풀고 한겨울을 무난하게 날 수 있는 힘을 얻었다고 한다. 간장과 고춧가루를 넣어 짭조름하고 매콤하게 조린 토종 미꾸리 조림은 아이들도 좋아하는 밥도둑이었다. 추억이 있어 더욱 특별한 토종 미꾸리 밥상을 만나본다.
※ 이 영상은 2024년 11월 07일 방영된
[한국인의 밥상 - 대를 이어온 토종, 세월의 맛을 품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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