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재발견 '천년의 이야기를 간직하다 - 군위'
군위라고 말하면 십중팔구는 구미라고 알아들을 정도로 우리에게 낯선 고장, 군위.
서울과 비슷한 면적의 군위는 팔공산을 사이에 두고 남쪽으로 대구광역시와 이웃해있다.
중앙고속도로가 지나 서울에서도 4시간이면 족히 닿을 정도로 접근성도 좋지만,
군위에서 만나는 풍경은 외지고 한적한 그저 산골이다. 하지만 소박해서 더욱 정겨운 이곳에는 놀랍게도 천 년의 역사가 잠들어 있다는데. 종교적으로 군사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우리가 몰랐던 많은 이야기들을 품고 있는 고장, 아스라이 그리운 고향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고장 군위로 떠나본다.
1. 숨겨진 불교의 성지
조선이 성리학을 나라의 근본으로 삼기 이전, 오랜 시간 이 땅은 불교의 나라였다.
고려의 선승으로 국사의 자리에까지 올랐던 일연스님은 말년을 군위 인각사에서 보내며,
우리의 건국신화인 단군신화와 고조선의 역사를 담은 삼국유사를 집필했고, 신라의 원효
대사는 군위의 팔공산 자락에서 오랜 시간 수행했다고 전해진다.
그런가하면 우리나라 석굴사원 가운데 유일하게 자연암벽을 이용해 조성된 군위 삼존석굴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경주 토함산의 석굴암보다 백여 년 이상 앞선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군위에서 꽃핀 불교문화의 흔적들을 찾아본다.
2. 군위 - 당당했던 군사들의 위세
군위라는 지명은 언제, 왜 생겨났을까. 혹자는 삼국통일과정에서 나당연합군이 이곳을 지날 때부터였다고도 하고 또 다른 이는 고려 개국 과정에서 태조 왕건의 군대가 지나간 이후부터라고도 한다. 어쨌거나 두 이야기의 공통분모는 바로 군사. 그들의 위세가 하도 당당하여 군사 '군', 위엄 '위'자를 써서 군위라 했다고 전한다. 그래서일까. 군위는 유독 전쟁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김유신과 소정방, 이무 세 장군을 모신 장군당부터 임진왜란 때 승병들이 화약을 제조했던 인각사, 의병을 일으킨 장사진 의병장 유적지, 그리고 대구를 수성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감령재까지, 전략적 길목에 있어 전쟁의 소용돌이를 피할 수 없었던 군위의 역사를 살펴본다.
3. 추억과 마주하다
눈부신 개발의 속도에서 빗겨간 군위에는 박제된 줄 알았던 그리운 추억 속의 풍경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증기기관차에 물을 대던 급수탑이 있는 간이역, 수십 년 세월의 더께를 얹고 오늘도 여전히 손님을 맞고 있는 역전 상회와 다방, 추억박물관으로 재탄생한 중학교 등 잊고 있던 추억 속으로 들어가 본다.
4. 천 년 세월이 깃든 곳, 한밤마을
군위 한밤마을의 집들은 저마다 모두 야트막한 돌담을 두르고 있다. 모양도 크기도 다른 돌들이 이끼를 얹고 쌓여있는 돌담들은 언제, 어떻게 탄생한 것일까. 한밤마을은 950년 경, 부림 홍씨의 입향조 홍란이라는 선비가 이주해오면서 부림 홍씨의 세거지가 된 곳. 독특한 '흥'자 구조로 지금도 살림집으로 사용되고 있는 부림 홍씨의 남천 고택, 대한민국 한자의 유래를 밝히는 휘찬려사 를 편찬한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 목재 홍여하 선생, 가슴 아픈 사연이 깃든 마을 돌담 등 천 년 역사의 고을 한밤마을에 얽힌 이야기를 소개한다.
5. 잃어버린 우리들의 고향
급격한 도시화와 함께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것만 같던 고향의 삶이 군위에는 싱싱하게 살아 숨 쉰다. 막걸리와 뜨끈한 국솥을 내걸고 동네마다 돌아가며 진행되는 벼 수매 현장, 장날이면 북새통을 이루는 방앗간과 여자들의 사랑방이 되는 읍내 미용실, 우시장, 전국 생산량 1위를 자랑하는 군위 가시오이 재배농가, 수요가 끊겨 더 이상 맥을 잇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는 왕골돗자리 장인까지 지금 군위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한국재발견 #군위 #한밤마을
군위라고 말하면 십중팔구는 구미라고 알아들을 정도로 우리에게 낯선 고장, 군위.
서울과 비슷한 면적의 군위는 팔공산을 사이에 두고 남쪽으로 대구광역시와 이웃해있다.
중앙고속도로가 지나 서울에서도 4시간이면 족히 닿을 정도로 접근성도 좋지만,
군위에서 만나는 풍경은 외지고 한적한 그저 산골이다. 하지만 소박해서 더욱 정겨운 이곳에는 놀랍게도 천 년의 역사가 잠들어 있다는데. 종교적으로 군사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우리가 몰랐던 많은 이야기들을 품고 있는 고장, 아스라이 그리운 고향 풍경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고장 군위로 떠나본다.
1. 숨겨진 불교의 성지
조선이 성리학을 나라의 근본으로 삼기 이전, 오랜 시간 이 땅은 불교의 나라였다.
고려의 선승으로 국사의 자리에까지 올랐던 일연스님은 말년을 군위 인각사에서 보내며,
우리의 건국신화인 단군신화와 고조선의 역사를 담은 삼국유사를 집필했고, 신라의 원효
대사는 군위의 팔공산 자락에서 오랜 시간 수행했다고 전해진다.
그런가하면 우리나라 석굴사원 가운데 유일하게 자연암벽을 이용해 조성된 군위 삼존석굴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경주 토함산의 석굴암보다 백여 년 이상 앞선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군위에서 꽃핀 불교문화의 흔적들을 찾아본다.
2. 군위 - 당당했던 군사들의 위세
군위라는 지명은 언제, 왜 생겨났을까. 혹자는 삼국통일과정에서 나당연합군이 이곳을 지날 때부터였다고도 하고 또 다른 이는 고려 개국 과정에서 태조 왕건의 군대가 지나간 이후부터라고도 한다. 어쨌거나 두 이야기의 공통분모는 바로 군사. 그들의 위세가 하도 당당하여 군사 '군', 위엄 '위'자를 써서 군위라 했다고 전한다. 그래서일까. 군위는 유독 전쟁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데... 김유신과 소정방, 이무 세 장군을 모신 장군당부터 임진왜란 때 승병들이 화약을 제조했던 인각사, 의병을 일으킨 장사진 의병장 유적지, 그리고 대구를 수성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감령재까지, 전략적 길목에 있어 전쟁의 소용돌이를 피할 수 없었던 군위의 역사를 살펴본다.
3. 추억과 마주하다
눈부신 개발의 속도에서 빗겨간 군위에는 박제된 줄 알았던 그리운 추억 속의 풍경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증기기관차에 물을 대던 급수탑이 있는 간이역, 수십 년 세월의 더께를 얹고 오늘도 여전히 손님을 맞고 있는 역전 상회와 다방, 추억박물관으로 재탄생한 중학교 등 잊고 있던 추억 속으로 들어가 본다.
4. 천 년 세월이 깃든 곳, 한밤마을
군위 한밤마을의 집들은 저마다 모두 야트막한 돌담을 두르고 있다. 모양도 크기도 다른 돌들이 이끼를 얹고 쌓여있는 돌담들은 언제, 어떻게 탄생한 것일까. 한밤마을은 950년 경, 부림 홍씨의 입향조 홍란이라는 선비가 이주해오면서 부림 홍씨의 세거지가 된 곳. 독특한 '흥'자 구조로 지금도 살림집으로 사용되고 있는 부림 홍씨의 남천 고택, 대한민국 한자의 유래를 밝히는 휘찬려사 를 편찬한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 목재 홍여하 선생, 가슴 아픈 사연이 깃든 마을 돌담 등 천 년 역사의 고을 한밤마을에 얽힌 이야기를 소개한다.
5. 잃어버린 우리들의 고향
급격한 도시화와 함께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것만 같던 고향의 삶이 군위에는 싱싱하게 살아 숨 쉰다. 막걸리와 뜨끈한 국솥을 내걸고 동네마다 돌아가며 진행되는 벼 수매 현장, 장날이면 북새통을 이루는 방앗간과 여자들의 사랑방이 되는 읍내 미용실, 우시장, 전국 생산량 1위를 자랑하는 군위 가시오이 재배농가, 수요가 끊겨 더 이상 맥을 잇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는 왕골돗자리 장인까지 지금 군위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본다.
#한국재발견 #군위 #한밤마을
- Category
- 다큐멘터리 - Document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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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다큐멘터리, doc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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