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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소국이 중립적이면 벌어지는 최후. 인조는 중립외교 왕이었다? 굴욕의 역사 병자호란의 전말│한국사 바로 알기│광해군│인조반정│다큐프라임│#골라듄다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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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영상은 2018년 2월 5일에 방송된 <다큐프라임 - 한국사 오천년 생존의 길 4부 병자호란, 궁지에 몰린 중립외교>의 일부입니다.

약소국의 중립외교는 가능한 것인가
친명배금으로 알려진 인조도 사실 중립외교의 군주였다
명분과 편견으로 현실을 못 보는 나라의 최후

약소국의 중립외교는 과연 가능한 것인가.
병자호란이라는 굴욕의 역사를 통해 독자적 힘을 갖추지 않은 중립외교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17세기는 명나라의 쇠퇴와 만주족이 세운 후금(청)의 부흥으로 요약된다. 이 시기 1623년 반정으로 광해군을 옥좌에서 쫓아내고 왕위에 오른 인조는 특히 외교적인 면에서는 광해군의 기존의 정책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광해군 대의 중립외교와 완전히 반대 노선인 숭명배금의 정책을 천명한다. 그리고 이런 강경 외교가 결국 병자호란을 불렀다는 것이 역사적 상식으로 통한다.

그러나 인조정권의 대외정책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당시 조선은 후금에 대해 강경외교를 실시한 적이 없다. 우선 인조 자신부터 후금과 적극적으로 대결할 생각이 없었다. 제대로 된 군사력이나 능력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막 떠오르고 있는 군사강국인 후금과 군사적 충돌이라도 벌이게 되면 어렵게 잡은 정권을 허무하게 날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배금정책은 그저 슬로건에 불과했고 실제의 외교정책은 오히려 광해군 대의 중립외교에 가까웠다.

평시에는 중립외교가 가능하지만 두 강대국의 대결이 막바지에 다다르면 양자택일의 순간이 오게 되는 게 역사의 필연이다. 조선은 다 망해가는 명나라를 문명의 나라로, 강성하고 있는 후금을 야만의 나라로 규정해 전쟁을 택한다. 그러나 임진왜란 이후 조선과 인조는 전쟁을 치를 어떠한 군사력도, 국토 사수의 의지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결국 결과는 삼전도의 굴욕이라는 오욕의 역사로 마무리됐다. 강대국 사이에 낀 약소국의 모든 전략은 중립에 대한 막연한 희망이 아니라 ‘교묘한 외교력’과 ‘강력한 자기방어능력’ 이라는 전제 하에서 시작해야함은 병자호란의 역사가 후대에 알리는 뼈아픈 교훈이다.

✔ 프로그램명 : 다큐프라임 - 한국사 오천년 생존의 길 4부 병자호란, 궁지에 몰린 중립외교
✔ 방송 일자 : 2018년 2월 05일

#골라듄다큐 #다큐프라임 #역사 #한국사 #인조반정 #광해군 #병자호란 #삼전도의굴욕 #중립외교
Category
다큐멘터리 - Documentary
Tags
EBS, EBS documentary, EBS 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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