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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 너는 언제 늙어봤느냐 – 오래 익어야 제맛! [한국인의 밥상] 2020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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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로 막고 막대로 치려 했더니
백발이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 우탁의 시조 탄로가(歎老歌) 중에서

사람만 늙는 게 아니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생명도 나이가 들고 늙는다.
늙은 호박, 노각, 노계처럼 아예 이름에 나이가 표현되기도 하고,
한해 농사의 마침표를 찍는 끝물 채소도 있다.
처음의 생생함은 아니지만, 오래 익어 더 진하고 단단해진 맛의 주인공들!
살아온 시간만큼 깊어지는 세월의 맛을 만난다.

■ 너도 늙고 나도 늙는구나 – 노부부의 늙은 호박
당진의 한 마을. 텃밭에는 여름에 따지 않고 밭에서 그대로 익혀 누렇게 익은 늙은 호박이 가을을 맞는다. 어디를 가든 늘 서로의 팔짱을 꼭 끼고 다니신다는 이병직, 노일남 어르신 부부는 올해로 결혼한 지 60년째. 젊은 시절 논과 밭을 누비며, 바쁘게 살아온 아내가 거동이 불편해지면서 남편은 아내의 든든한 지팡이가 되어주었고, 늙은 호박처럼 둥글둥글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오래 익은 늙은 호박은 어린 애호박과 달리 겉은 단단해지고 속은 더 진한 단맛을 품는다. 뚝뚝 썰어 게젓국을 넣어 담가 익힌 호박지, 겨우내 찬바람을 맞아 더 달고 부드러워진 호박고지로 떡을 찌고, 따뜻하게 호박죽 한솥 끓이면, 60년을 함께 살아온 두 사람의 시간도 달달해진다. 늙은호박처럼 한 생애를 뜨겁게 살아내고 단단하고 묵직해진, 그리고 서로의 곁을 지키며 달콤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노부부의 밥상을 만난다

■ 끝은 없는 거야 – 끝물채소의 재발견
가을이 깊어지면, 들녘에도 단풍이 든다. 이맘때면 마음이 늘 콩밭에 가 있다는 경주의 솜씨 좋은 토속음식 삼총사. 바로 노랗게 색이 변한 단풍콩잎들 때문이다. 콩잎이 단풍 들 때면, 고추들은 한해 농사를 마무리하기 위해 가지째 뽑아내고 마지막 끝물고추를 거두어들인다. 같은 가지에서 열리는 열매라도 처음 수확하는 첫물과 달리 끝물은 크기는 작지만 조직은 더 단단해지고 맛은 더 진해진다. 말리고 절이고 삭혀서 먹는 저장 음식에는 끝물채소가 제격. 단풍콩잎과 끝물고추는 소금물에 삭혔다가 장아찌와 부각, 고추지를 만들어 겨우내 밥반찬으로 올리고, 끝물고구마줄기는 말려두었다가 생선조림을 만들어 별미로 먹는다. 끝물채소들이 총동원되는 종합 선물 세트는 경북지역의 토속장인 시금장. 보리등겨가루로 구멍떡을 만들어 찌고 왕겨 불에 은은하게 굽고 띄워 메주를 빚는다. 이 메주를 곱게 빻은 다음 끝물고추와 단풍콩잎장아찌, 무말랭이 등을 골고루 넣고 시금장을 만드는데, 손이 많이 가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터라 요즘은 보기 힘든 귀한 음식이 됐다. 어려서 어머니가 해주던 그 맛을 이제야 제대로 알게 되었다는 세 사람. 기다린 만큼 더 깊어지는 맛의 지혜를 잊지 않고 이어가기 위해 함께 노력하고 있는 이들에게 끝물채소는 가을 들녁에 내어준 마지막 선물이다.

■ 늙는 것도 준비가 필요하다 – 닭키우며 사는 은퇴 부부의 노계 이야기
늙음은 잘 준비해도 낯설다. 누구에게나 처음인 까닭이다.
하동, 지리산 자락에 자리 잡은 농장에는 아침부터 요란한 닭 울음소리와 함께 제2의 인생을 살아가는 박창식, 임영옥 부부가 있다. 부산에서 평범하게 직장생활을 하던 남편이 갑작스레 은퇴를 결정하고, 선택한 것은 바로 달걀. 시행착오를 겪으며 지리산 자락에서 건강한 달걀을 생산하기 위해 8년째 씨름 중인 부부에게 가장 큰 고민은 건강하게 키운 닭이 1년 이상 키우면 난각이 얇은 달걀을 생산하게 되는 것. 정성껏 키운 노계가 쓰임새를 인정받지 못하는 게 늘 안타깝다. 노계는 일반 육계가 가진 영양소를 그대로 가지고 있고, 살이 단단해 식감이 쫄깃하고 진한 국물을 내기에 더없이 좋기 때문이다. 사위에게 잡아주던 씨암탉도 대부분 노계였다. 조선 시대 문헌인 시의전서에 노계의 살을 부드럽게 해주는 앵두나무 비법이 기록되어 있을 만큼 노계는 밥상의 오래된 주인공이었다. 앵두나무를 넣고 푹 고아 닭육수를 내고, 무를 썰어 넣고 끓이는 닭뭇국은 예로부터 하동에 전해오는 음식이다. 일찍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신 임영옥 씨에겐 언제나 열 일 제쳐두고 달려와 주는 큰언니가 어머니표 음식 맛을 내주는 든든한 지원군. 닭을 삶아 살만 따로 발라내 양념해 올리는 어머니표 닭칼국수는 ‘제부 사랑은 처형’의 마음을 오롯이 담은 별미다. 노계는 살이 단단하고 쫄깃해 찜을 하기에도 제격. 하지만 조리법이 중요하다. 오래 푹 익히거나, 압력솥을 이용하는 게 좋다. 매콤한 양념에 버무리고, 하동의 명물인 섬진강 참게를 함께 넣어 찌면 더할 나위 없는 가을 별미. 인생의 전반전을 마치고, 잘 늙어가기 위한 준비를 하며 사는 은퇴 부부의 사연이 담긴 노계 밥상을 만나보자.

■ 오래된 기억과 경험이 마을의 유산이 되다 - 부여 송정그림책마을 이야기
하냥 살응게 이냥 좋지~
마을 안에 자리 잡은 예쁜 찻집이 눈길을 사로잡은 부여 송정마을. 찻집에는 어르신들이 직접 커피를 내리고 향긋한 꽃차를 우린다. 코로나 이전까지만 해도 매일 사람들로 북적였다는 이 찻집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그림책. 마을 어르신들이 농사짓고 자식 키우며 살아온 저마다의 이야기들을 한 권, 한 권 그림책으로 펴냈다. 마을을 찾아온 손님들에게 직접 자신의 그림책을 읽어주며 생전 처음 박수와 칭찬을 받으며 사신다는 송정마을 어르신들. 이 마을의 가장 큰 자랑은 100여 년 전, 가난한 아이들의 한글 교육을 위해 문을 열었던 야학당이다. 낮에는 일하느라 힘들고 고단했지만, 밤이면 야학당에 모여 글을 배우고 꿈을 키웠던 아이들은 부지런히 일하며 살아온 마을의 든든한 지킴이가 됐다.
농사는 하늘과 자연과 함께 하는 거라 믿으며 살아온 농부의 보리밥 한 그릇과 깡치젓갈찜, 할머니와 참게 잡던 추억과 그리움이 담긴 참게탕, 술 마시는 남편 때문에 속앓이하던 아내의 호박잎수제비까지, 저마다의 사연이 한 권의 그림책이 되고 추억의 음식이 되어 밥상에 오른다. 그림책 덕분에 생애 가장 설레는 날들을 살고 있다는 송정마을 어르신들의 밥상을 통해 늙음이란 상실이 아닌 경험과 지혜가 쌓여가는 과정임을 발견한다.
Category
다큐멘터리 - Documentary
Tags
한국인의 밥상, 밥상, 한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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