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츄럴 휴먼 다큐 자연의 철학자들 - 15회 '오늘도 유유자적[悠悠自適]' 2022년 7월 1일 방송
◆ 사람도 자연의 일부다
해발 800미터의 영월 망경대산 중턱에 위치한 외딴집. 이곳은 산에 묻혀서 그 산의 일부가 된 시인, 유승도(63) 씨의 집이다. 시인은 25년 전, 백일 된 아들, 아내 김미숙 씨와 함께 강원도 영월 산골 오지로 들어왔다. 낭만적인 시인과 부지런한 아내, 느리고 빠르고... 삶의 속도가 제각각이지만 일상의 철학은 같다. “힘들지 않을 만큼만 하자, 저만의 속도대로!”
산에 묻혀 살다 보니 시인에겐 사람과 산짐승의 경계도 없다. 농작물과 닭들을 노리는 산짐승과 먹이 경쟁을 하기는 마찬가지란다. 자연의 언어로 빚어낸 시인의 시어 속에는 하찮은 벌레, 산새조차도 자연을 공평하게 함께 공유하는 절친한 이웃일 뿐이다.
◆ 나를 세상 밖으로 불러낸 ‘나의 새’
스무 살 청년 유승도는 유난히 세상살이에 시달렸다. 국문학과를 졸업한 그는 번번이 신춘문예에 실패했고 생계를 위해 막노동판, 탄광촌을 전전했으며 옥돔잡이 연안어선도 마다하지 않았다. 도심의 높은 건물은 날마다 그를 덮치는 것 같았고 온 세상은 그에게 깡패처럼 다가왔단다. 그래서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듯 들어간 정선 구절리 폐광촌은 청년 유승도, 스스로를 가둔 감옥이었다. 창문마다 검은 종이를 붙여놓고 빛도 없이 폐인처럼 살았다. 그렇게 한 달쯤 지났을까. 어느 날, 새소리가 들렸다. 며칠을 지저귀는 새가 보고 싶어 검은 종이를 뜯고 창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때 만난 그 새를 그린 시, ‘나의 새’라는 작품으로 그는 1995년, 문예중앙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시인으로 등단했다. 지금도 시인의 헛간과 마당엔 딱새와 물까치 부부가 둥지를 틀고 포란 중이다. 어둠 속에 갇힌 시인을 다시 세상 밖으로 불러낸 ‘나의 새’, 인생 2막을 영월 산골짜기에서 새롭게 시작하도록 도운 새는 여전히 시인에겐 가장 소중하고 가까운 벗이다.
◆ 오늘 못하면 내일 하고
‘워~워~’ 쟁기 모는 소리가 산골짜기를 울린다. 그런데 쟁기는 소 대신 아내, 김미숙 씨가 끈다. 아침형 아내와 저녁형 남편, 생활 리듬이 다른 부부가 함께하는 유일한 밭일은 쟁기질과 모종 심기. 웬만한 것은 모두 자급자족한다. 하루에 두 가지 일은 안 한다는 시인 남편에게 아내는 딱히 불만이 없다. 자기가 가장 잘하는 일을 하면 되고, 서로 못하는 일을 대신하면 된다. 각자의 속도대로 살다 보니 농작물도 이웃보다 늦게 심기 일쑤. 그뿐인가! 해가 길어지는 계절의 저녁 식사 시간은 남보다 늦다. 왜냐하면 아내 김미숙 씨에게 밥 시계는 바로 해! 해가 지고 어둑해지는 그때가 밥시간이란다. 해가 긴 여름엔 8~9시, 해가 짧은 겨울엔 4~5시다. 산짐승도 산새도 어둠 속 제 둥지로 돌아간 밤, 그들과 꼭 닮은 부부의 밤도 자연의 일부처럼 여겨진다.
◆ 사람도 흐른다
산보 삼아 뒷산에 오르는 시인은 늘 산 중턱까지만 오른다. 그곳에 서면 아래를 내려다보는 오만함과 위를 올려다보는 겸손함, 양자의 감정을 다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만물은 자연 앞에서 높낮이 없이 평등하나 가끔 오만해지고 싶은 욕망이 들 때 이곳에 서면 기울어진 마음의 수평도 맞출 수가 있단다. 또한 나를 비추어 가만히 들여다볼 수 있는 맑은 계곡은 시인에게 자기성찰의 자리다. 다정했던 이웃이 떠난 자리를 다시 그 자손이 채우고, 사람도 물 흐르듯 흘러간다. “별다른 의미 없이 그냥 살아도 괜찮아요, 인생이 그런 것 같고...” 산에 묻혀서 산의 일부가 돼서 그냥 산다는 시인이 바쁜 세상을 향해 던지는 위로다.
#자연의철학자들 #산골 #시인
◆ 사람도 자연의 일부다
해발 800미터의 영월 망경대산 중턱에 위치한 외딴집. 이곳은 산에 묻혀서 그 산의 일부가 된 시인, 유승도(63) 씨의 집이다. 시인은 25년 전, 백일 된 아들, 아내 김미숙 씨와 함께 강원도 영월 산골 오지로 들어왔다. 낭만적인 시인과 부지런한 아내, 느리고 빠르고... 삶의 속도가 제각각이지만 일상의 철학은 같다. “힘들지 않을 만큼만 하자, 저만의 속도대로!”
산에 묻혀 살다 보니 시인에겐 사람과 산짐승의 경계도 없다. 농작물과 닭들을 노리는 산짐승과 먹이 경쟁을 하기는 마찬가지란다. 자연의 언어로 빚어낸 시인의 시어 속에는 하찮은 벌레, 산새조차도 자연을 공평하게 함께 공유하는 절친한 이웃일 뿐이다.
◆ 나를 세상 밖으로 불러낸 ‘나의 새’
스무 살 청년 유승도는 유난히 세상살이에 시달렸다. 국문학과를 졸업한 그는 번번이 신춘문예에 실패했고 생계를 위해 막노동판, 탄광촌을 전전했으며 옥돔잡이 연안어선도 마다하지 않았다. 도심의 높은 건물은 날마다 그를 덮치는 것 같았고 온 세상은 그에게 깡패처럼 다가왔단다. 그래서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듯 들어간 정선 구절리 폐광촌은 청년 유승도, 스스로를 가둔 감옥이었다. 창문마다 검은 종이를 붙여놓고 빛도 없이 폐인처럼 살았다. 그렇게 한 달쯤 지났을까. 어느 날, 새소리가 들렸다. 며칠을 지저귀는 새가 보고 싶어 검은 종이를 뜯고 창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때 만난 그 새를 그린 시, ‘나의 새’라는 작품으로 그는 1995년, 문예중앙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시인으로 등단했다. 지금도 시인의 헛간과 마당엔 딱새와 물까치 부부가 둥지를 틀고 포란 중이다. 어둠 속에 갇힌 시인을 다시 세상 밖으로 불러낸 ‘나의 새’, 인생 2막을 영월 산골짜기에서 새롭게 시작하도록 도운 새는 여전히 시인에겐 가장 소중하고 가까운 벗이다.
◆ 오늘 못하면 내일 하고
‘워~워~’ 쟁기 모는 소리가 산골짜기를 울린다. 그런데 쟁기는 소 대신 아내, 김미숙 씨가 끈다. 아침형 아내와 저녁형 남편, 생활 리듬이 다른 부부가 함께하는 유일한 밭일은 쟁기질과 모종 심기. 웬만한 것은 모두 자급자족한다. 하루에 두 가지 일은 안 한다는 시인 남편에게 아내는 딱히 불만이 없다. 자기가 가장 잘하는 일을 하면 되고, 서로 못하는 일을 대신하면 된다. 각자의 속도대로 살다 보니 농작물도 이웃보다 늦게 심기 일쑤. 그뿐인가! 해가 길어지는 계절의 저녁 식사 시간은 남보다 늦다. 왜냐하면 아내 김미숙 씨에게 밥 시계는 바로 해! 해가 지고 어둑해지는 그때가 밥시간이란다. 해가 긴 여름엔 8~9시, 해가 짧은 겨울엔 4~5시다. 산짐승도 산새도 어둠 속 제 둥지로 돌아간 밤, 그들과 꼭 닮은 부부의 밤도 자연의 일부처럼 여겨진다.
◆ 사람도 흐른다
산보 삼아 뒷산에 오르는 시인은 늘 산 중턱까지만 오른다. 그곳에 서면 아래를 내려다보는 오만함과 위를 올려다보는 겸손함, 양자의 감정을 다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만물은 자연 앞에서 높낮이 없이 평등하나 가끔 오만해지고 싶은 욕망이 들 때 이곳에 서면 기울어진 마음의 수평도 맞출 수가 있단다. 또한 나를 비추어 가만히 들여다볼 수 있는 맑은 계곡은 시인에게 자기성찰의 자리다. 다정했던 이웃이 떠난 자리를 다시 그 자손이 채우고, 사람도 물 흐르듯 흘러간다. “별다른 의미 없이 그냥 살아도 괜찮아요, 인생이 그런 것 같고...” 산에 묻혀서 산의 일부가 돼서 그냥 산다는 시인이 바쁜 세상을 향해 던지는 위로다.
#자연의철학자들 #산골 #시인
- Category
- 다큐멘터리 - Document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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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BS, 다큐멘터리, doc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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