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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가 입이 닳도록 극찬하는 한국의 '이것' 바보로 불리던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바쳐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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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전 세계가 극찬하고 있는
한국의 '의료 시스템'

불과 50년전만 하더라도 못살던
한국에서 지금은 어떻게

내놓으라는 선진국보다 더 좋은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었던 걸까요?

6.25가 끝나고 한국은 당장 먹고 살기도
바쁜 아주 가난한 나라였습니다.

의료비가 너무 비싸 아파도 제대로 치료받기
어려운 것이 한국의 현실이었습니다.

1963년 한국 정부는 의료보험법을 제정했지만
가난했던 한국에서 사실상 실행이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바보 의사로 불리던 장기려 박사가
주변 사람들과 뜻을 모아 나섰습니다.

1968년 '청십자 의료보험'조합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의료 혜택을 받도록 노력했습니다.

월 보험료로 60원을 받았다고 하는데요.
당시 자장면 한 그릇 가격이 50원이었다고 하니까

금액적으로 부담도 없고 비싼 의료 혜택도
누리고 그 시대에는 혁신적인 제도였겠네요.

그렇게 20만명이 넘는 영세민 조합원이
의료 수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청십자 의료보험은 현재 국민건강보험의
토대가 되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1977년 어느정도 나라에 돈이 쌓이기 시작한
한국 정부는 의료보험법을 전면 개정하게 됩니다.

이때 청십자 의료보험을 참고해서 개정되었고
1~2년에 걸쳐 범위를 확대해갔습니다.

1982년 16인 이상 사업장 근로자까지 확대

1989년 지역 의료보험, 도시 지역까지
전 국민 의료보험이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한국 의료 시스템이 만들어지는데
장기려 박사의 공을 인정해

1976년 국민훈장동백장

1979년 막사이사이상(아시아의 노벨상)

1995년 인도주의 실천 의사상

등 수많은 명예로운 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장기려 박사는 의료행정가이기 전에
실력있는 의사이기도 했습니다.

1943년 국내 최초로 간암 환자의
암 덩어리를 떼내는데 성공

1959년 10월 20일 한국 최초로
간암환자의 간엽절제 수술을 성공

또한 한국의 슈바이쳐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데요.

이것은 장기려 박사의 일생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의료보험이 정착되면서 청십자 의료보험이
필요 없어지자 결국 해산하게 되었는데

장기려 박사는 너무 기뻐했고 조합의 전 자산을
지역의료보험에 인도했습니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 때 정부는 장기려 박사에게
당신은 특혜를 받아도 충분한 자격이 있다며

제안을 했지만 평생 그러워하던 가족을 뒤로하고
형평성이 맞지 않다는 이유로 거절했습니다.

그리고 처음에 그가 의사가 되면서 다짐했었던
다짐을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지켰습니다.

돈이 없는 환자에겐 치료비를 받지 않았고
오히려 돈을 지어주며 용기를 주었습니다.

바보 의사, 한국의 슈바이처, 무능한 의사
이 모든 단어가 장기려 박사를 칭하는 말입니다.

1995년 12월 25일 장기려 박사가 타계하면서
그에게 남아있던 것은 모두에게 충격을 주었습니다.

평생을 병원 옥탑방에서 생활했으며
통장에는 1000만원이 전부였기 때문입니다.

"늙어서 별로 가진 것이 없다는 것은
다소 기쁨이긴 하나 죽었을 때 물레
밖에 안 남겼다는 간디에 비하면
나는 아직도 가진 것이 너무 많다"

전 세계가 극찬하는 한국의 의료 시스템의
기초를 만들었던 장기려 박사님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는 너무나 많아서 다음에
따로 영상을 만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건강의료보험 #장기려
Category
다큐멘터리 - Document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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