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스페셜 - 기장씨네 뒷산 섬이 되다 '옥정호'
당신의 고향은 어디입니까?
고향을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인가요?
하루하루 빠르게 변해가는 도시생활 속에서 고향은 언제나 그립고 정겨운 이름이 아닐까.
하지만 떠나온 고향은 더 이상 추억 속에 남아있는 옛 모습이 아니다.
그 동안 빠른 속도로 개발을 거듭해 와 고향의 정겨운 풍경들은 하나 둘 사라지고 말았다. 도시생활에 찌든 현대인들에게 마음의 안정을 전해주던 고향의 모습은 어디로 간 것일까.
■ 특별한 사연을 간직한 임실군 운암면
전라북도 임실군 운암면은 특별한 사연을 간직한 곳이다. 1960년대 섬진강댐이 만들어지고 옥정호가 생기면서 수몰의 아픔이 서려있는 곳.. 하지만 일부 남아 지금도 사람들의 질긴 삶이 이어지고 있는 곳이다. 수몰로 인해 고향마을과 많은 이웃들, 그리고 생계수단이었던 논과 밭을 대부분 잃었지만 이곳엔 아직도 자신들 삶의 방식을 고수하며 고향을 지키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 옥정호를 앞마당 삼고 있는 내마마을
내마마을은 구불구불 산길을 돌아 버스를 두 번씩 갈아타고 들어가야 하는 작은 오지마을이다. 이곳 역시 옥정호가 생기면서 마을의 절반 이상이 물에 잠긴 수몰지역. 수몰이 되기 전에는 50여 세대가 살았지만, 20여 세대가 수몰을 겪은 후 현재는 9세대가 살고 있는 작은 마을이다. 수몰 전에는 들이 넓어 농사짓고 살기에 좋았던 곳. 일제강점기 때나 한국전쟁 이후에도 전기가 들어오는 등 다른 마을에 비해 잘 살던 마을이었다. 하지만 수몰 이후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고 오지마을의 하나로 남아있다. 수몰 이후 절반 이상의 토지가 물에 잠겨 내마마을에선 주로 밭농사를 짓고 산다. 이 마을 사람들의 주요소득원은 고추농사. 1월부터 10월까지 이어지는 고추농사에 정성을 쏟으며 1년을 산다.
■ 내마마을 토박이 최기장씨 이야기
이곳엔 고향을 지키고 있는 최기장씨 부부가 살고 있다. 남편은 65세, 부인은 54세 11살 차이 나는 부부는 내마마을의 장승같은 존재. 15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는 최기장씨는 늘 넉넉한 웃음으로 사람들을 맞이해 주는 인심 좋은 시골할아버지다.
전주 도시처녀였던 부인은 18살에 중매로 시골오지마을에 들어와 내마댁이 되었다. 넉넉지 않았지만 아껴주는 남편이 있었기에 어려움 모르고 세월을 보냈다는 부인 김정애씨. 천상 농사꾼인 남편을 따라 농사짓는 일이 쉽진 않지만 한결같은 마음으로 아껴주는 남편이 있어 행복하다. 옥정호 때문에 고향마을의 옛 모습은 잃었지만, 고향의 변화에 적응하며 옥정호에 삶을 기대어 사는 최기장 부부의 잔잔한 고향이야기를 전한다.
■ 섬이 된 산, 붕어섬
옥정호에 유유히 떠 있는 섬 하나. 그 이름은 붕어섬이다. 수몰되기 전에는 하나의 산이었지만, 옥정호에 잠기면서 섬이 되었다. 떠 있는 형상이 붕어를 닮았다고 해서 붕어섬이라 불리지만, 내마마을 사람들에게 불리는 옛 이름은 섬깎음 또는 외얏날이다. 최기장씨 부부는 바로 이 붕어섬에서 고추농사를 짓는다. 매일 배로 옥정호를 건너며 농사를 지어야하는 수고로움이 있지만, 붕어섬만큼 농사가 잘 되는 곳도 없다. 그래서 최기장 부부에게 붕어섬은 삶의 터전이자 늘 고마운 존재다. 하지만 임실군이 이곳을 생태관광지로 조성한다는 계획이 잡혀 있어 언제 이 터전을 잃을지 모르는 상황. 앞으로 이 부부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 수많은 사연들이 묻혀 있는 옥정호
옥정호가 생기면서 임실군과 정읍시(당시 정읍군) 등 2개 군 5개면 24개 리가 물에 잠겼고, 3천세대 2만명의 수몰민이 발생했다. 조상대대로 농사밖에 모르며 살아온 수몰민들은 정부에 완벽한 이주대책을 마련해 줄 것을 요구하는 투쟁을 벌였고, 수몰민의 이주대책사업은 당시 커다란 사회문제로 대두되기도 했다.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등지고 떠난 사람의 아픔과 한이 서려있고, 아직도 잊지 못하는 고향의 추억을 담고 있는 옥정호. 최기장씨는 매일 옥정호를 건너고 마주하며 고향을 떠올린다.
■ 옥정호에 기대어 사는 삶
옥정호가 없었다면 최기장씨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옥정호가 생기면서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맞이한 최기장씨. 한 때는 마을의 연락선을 운행하는 뱃사공이기도 했고, 옥정호가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되기 전까지는 고기잡이를 하며 살기도 했다. 이제는 매일 옥정호를 건너며 농사를 짓는 농사꾼이 되어있다. 옥정호는 고향을 앗아간 무서운 존재이면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 내준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다. 푸르른 옥정호에 기대어 사는 최기장씨 삶의 이야기를 통해 그 동안 잊고 지냈던 정겨운 고향이야기를 전해본다.
■ 최기장씨 오늘도 행복하세요?
올해 최기장씨에게는 유난히 우여곡절이 많다. 고추가 한참 자랄 시기에 비가 많이 와 고추는 병이 들었고 작년에 비해 수확량은 절반도 못 미칠 상황이다. 또 예상치 못한 집중호우로 최기장씨 소먹이 창고까지 물이 차면서 여름위기를 넘겨야 했으며, 갑자기 어깨를 다쳐 수술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삶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최기장씨. 오늘도 행복한 그의 삶은 우리에게 어떤 깨달음을 줄 것인가.
#옥정호 #내마마을 #고향
당신의 고향은 어디입니까?
고향을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인가요?
하루하루 빠르게 변해가는 도시생활 속에서 고향은 언제나 그립고 정겨운 이름이 아닐까.
하지만 떠나온 고향은 더 이상 추억 속에 남아있는 옛 모습이 아니다.
그 동안 빠른 속도로 개발을 거듭해 와 고향의 정겨운 풍경들은 하나 둘 사라지고 말았다. 도시생활에 찌든 현대인들에게 마음의 안정을 전해주던 고향의 모습은 어디로 간 것일까.
■ 특별한 사연을 간직한 임실군 운암면
전라북도 임실군 운암면은 특별한 사연을 간직한 곳이다. 1960년대 섬진강댐이 만들어지고 옥정호가 생기면서 수몰의 아픔이 서려있는 곳.. 하지만 일부 남아 지금도 사람들의 질긴 삶이 이어지고 있는 곳이다. 수몰로 인해 고향마을과 많은 이웃들, 그리고 생계수단이었던 논과 밭을 대부분 잃었지만 이곳엔 아직도 자신들 삶의 방식을 고수하며 고향을 지키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 옥정호를 앞마당 삼고 있는 내마마을
내마마을은 구불구불 산길을 돌아 버스를 두 번씩 갈아타고 들어가야 하는 작은 오지마을이다. 이곳 역시 옥정호가 생기면서 마을의 절반 이상이 물에 잠긴 수몰지역. 수몰이 되기 전에는 50여 세대가 살았지만, 20여 세대가 수몰을 겪은 후 현재는 9세대가 살고 있는 작은 마을이다. 수몰 전에는 들이 넓어 농사짓고 살기에 좋았던 곳. 일제강점기 때나 한국전쟁 이후에도 전기가 들어오는 등 다른 마을에 비해 잘 살던 마을이었다. 하지만 수몰 이후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고 오지마을의 하나로 남아있다. 수몰 이후 절반 이상의 토지가 물에 잠겨 내마마을에선 주로 밭농사를 짓고 산다. 이 마을 사람들의 주요소득원은 고추농사. 1월부터 10월까지 이어지는 고추농사에 정성을 쏟으며 1년을 산다.
■ 내마마을 토박이 최기장씨 이야기
이곳엔 고향을 지키고 있는 최기장씨 부부가 살고 있다. 남편은 65세, 부인은 54세 11살 차이 나는 부부는 내마마을의 장승같은 존재. 15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는 최기장씨는 늘 넉넉한 웃음으로 사람들을 맞이해 주는 인심 좋은 시골할아버지다.
전주 도시처녀였던 부인은 18살에 중매로 시골오지마을에 들어와 내마댁이 되었다. 넉넉지 않았지만 아껴주는 남편이 있었기에 어려움 모르고 세월을 보냈다는 부인 김정애씨. 천상 농사꾼인 남편을 따라 농사짓는 일이 쉽진 않지만 한결같은 마음으로 아껴주는 남편이 있어 행복하다. 옥정호 때문에 고향마을의 옛 모습은 잃었지만, 고향의 변화에 적응하며 옥정호에 삶을 기대어 사는 최기장 부부의 잔잔한 고향이야기를 전한다.
■ 섬이 된 산, 붕어섬
옥정호에 유유히 떠 있는 섬 하나. 그 이름은 붕어섬이다. 수몰되기 전에는 하나의 산이었지만, 옥정호에 잠기면서 섬이 되었다. 떠 있는 형상이 붕어를 닮았다고 해서 붕어섬이라 불리지만, 내마마을 사람들에게 불리는 옛 이름은 섬깎음 또는 외얏날이다. 최기장씨 부부는 바로 이 붕어섬에서 고추농사를 짓는다. 매일 배로 옥정호를 건너며 농사를 지어야하는 수고로움이 있지만, 붕어섬만큼 농사가 잘 되는 곳도 없다. 그래서 최기장 부부에게 붕어섬은 삶의 터전이자 늘 고마운 존재다. 하지만 임실군이 이곳을 생태관광지로 조성한다는 계획이 잡혀 있어 언제 이 터전을 잃을지 모르는 상황. 앞으로 이 부부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 수많은 사연들이 묻혀 있는 옥정호
옥정호가 생기면서 임실군과 정읍시(당시 정읍군) 등 2개 군 5개면 24개 리가 물에 잠겼고, 3천세대 2만명의 수몰민이 발생했다. 조상대대로 농사밖에 모르며 살아온 수몰민들은 정부에 완벽한 이주대책을 마련해 줄 것을 요구하는 투쟁을 벌였고, 수몰민의 이주대책사업은 당시 커다란 사회문제로 대두되기도 했다.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등지고 떠난 사람의 아픔과 한이 서려있고, 아직도 잊지 못하는 고향의 추억을 담고 있는 옥정호. 최기장씨는 매일 옥정호를 건너고 마주하며 고향을 떠올린다.
■ 옥정호에 기대어 사는 삶
옥정호가 없었다면 최기장씨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옥정호가 생기면서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맞이한 최기장씨. 한 때는 마을의 연락선을 운행하는 뱃사공이기도 했고, 옥정호가 상수원보호구역으로 지정되기 전까지는 고기잡이를 하며 살기도 했다. 이제는 매일 옥정호를 건너며 농사를 짓는 농사꾼이 되어있다. 옥정호는 고향을 앗아간 무서운 존재이면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 내준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다. 푸르른 옥정호에 기대어 사는 최기장씨 삶의 이야기를 통해 그 동안 잊고 지냈던 정겨운 고향이야기를 전해본다.
■ 최기장씨 오늘도 행복하세요?
올해 최기장씨에게는 유난히 우여곡절이 많다. 고추가 한참 자랄 시기에 비가 많이 와 고추는 병이 들었고 작년에 비해 수확량은 절반도 못 미칠 상황이다. 또 예상치 못한 집중호우로 최기장씨 소먹이 창고까지 물이 차면서 여름위기를 넘겨야 했으며, 갑자기 어깨를 다쳐 수술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삶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최기장씨. 오늘도 행복한 그의 삶은 우리에게 어떤 깨달음을 줄 것인가.
#옥정호 #내마마을 #고향
- Category
- 다큐멘터리 - Documentary
- Tags
- KBS, 다큐멘터리, doc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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