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인의 밥상 - 따듯한 그리움을 담다, 어머니의 뚝배기
은근하게 달아올라, 오랫동안 따듯한 온기를 머금고 있는 뚝배기는 춥고, 배고팠던 시절, 한 끼라도 따듯하게 먹이고자 했던 어머니의 마음과 닮아있다.
코 끝에 스치는 차가운 바람은 뚝배기의 계절이 시작됐다는 신호탄과 같다. 한국인의 정서를 뚝배기처럼 진하게 담아낸 음식이 또 있을까? 모두가 고만고만하게 가난하던 시절, 어머니의 부엌에는 늘 뚝배기가 한자리 차지하고 있었다. 뚝배기는 열에 강하고, 한번 뜨거워지면 쉽게 식지 않는 특징을 지녔다. 그래서 식사가 끝날 때까지 따뜻하게 음식을 먹을 수 있었고, 염분이 많은 한국 음식을 담아도 녹슬지 않고 오래오래 사용할 수 있었다. 뚝배기가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건 조선시대 후기, 지체 높은 양반은 놋그릇과 백자를 주로 사용했고 서민은 옹기와 뚝배기로 식생활을 이어갔다. 그래서 옛날 어머니들은 한 끼라도 따뜻하게 먹이고 싶은 애정을 뚝배기에 가득 담았다. 저렴한 서민 그릇이니만큼 주막이나 장터 국밥집에서도 주로 뚝배기를 사용했다. 한국 사람이라면 뚝배기에 각별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어머니의 사랑이자 서민들의 애환(哀歡)이 담긴 그릇. 뚝배기는 배고픈 시절의 향수이자, 세월의 기억이다. 투박한 손으로 내어주던 어머니의 그릇, 뚝배기에 담긴 그리운 이야기와 추억의 밥상을 만나본다.
■ 깊고 진한 어머니의 손맛, 그리움이 담긴 뚝배기 -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닷새마다 한 번씩 추억 속 그리운 풍경이 펼쳐지는 천안의 성환장. 110년 역사를 자랑하는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명물은 국밥 골목이다. 60년 전 하나둘 천막을 치고 순대국밥을 끓이기 시작하면서 국밥 골목이 시작됐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당시, 주머니 가벼운 사람들은 순대국밥 한 그릇을 먹을 수 있는 장날만 손꼽아 기다리기도 했다.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의 허기를 채우고, 다시 살아갈 힘과 용기를 주었던 성환장의 국밥 골목.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진 요즘에도 그 추억의 맛을 찾아오는 이들이 많다. 따로 이름도 없이 천막 친 순서대로 손님들이 첫 번째, 두 번째 부르던 것이 그대로 가게 이름이 됐다. 나란히 줄지어 선 국밥 가게들 중에서도 가장 붐비는 곳은 두 번째 집. 돌아가신 어머니의 대를 이어 김성규 씨 (62세), 박정옥 씨(58세) 부부가 운영하고 있다. 어머니의 고집스러운 신념은 그대로 며느리에게로 이어졌다는데... 돼지 도축장에서 일한 삯으로 부속물을 받아서 순대를 만들었던 시어머니는 당신의 고생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손님에겐 늘 뚝배기가 넘치도록 음식을 내주었다. 아이를 낳고도 제대로 몸조리 할 틈 없이 장날이면 천막을 치고 순대를 팔았던 시어머니. 며느리인 정옥 씨의 순대국밥에는 2년 전 돌아가신 시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진하게 담겨 있다.
■ 설렁탕만 104년, 3대를 이어 온 추억의 뚝배기 한 그릇 – 경기도 안성시
이곳에서 처음 국밥집이 문을 연 건 104년 전인 1920년, 엄혹한 일제강점기였다. 3대째 이어 국밥집을 운영하는 김종열(65세) 씨는 안성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우시장이 있었던 덕에 국밥 가게를 시작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당시 종열 씨의 할머니가 우시장에서 얻어 온 부속물로 설렁탕을 끓이기 시작한 것. 고기가 귀하던 시절, 가장 여럿이 배를 채울 수 있는 방법은 국물을 내서 먹는 것이었다. 그렇게 할머니의 설렁탕집은 장터 바닥에서 시작해 104년을 이어왔다. 훌훌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설렁탕이지만 진한 맛을 제대로 내려면 24시간이 꼬박 걸린다. 고기 핏물 빼는 데 12시간, 그리고 다시 12시간 동안 국물을 우려야 제맛이 나기 때문이다. 덕분에 김종열 씨는 하루 대부분을 주방의 가마솥 앞에서 보낸다. 그리고 가마솥 앞에서 늘 어머니를 떠올린다. 종열 씨가 태어날 때부터 어머니는 할머니를 도와 설렁탕을 끓이고 있었다. 그가 처음으로 기억하는 어머니의 모습도 삼복더위에도 가마솥 앞을 떠나지 못하던 모습. 그리고 어머니의 자리를 이젠 아들이 대신하고 있다. “늘 이 자리에서 어머니를 만난다”고 말하는 김종열 씨, 그래서 어머니가 유언처럼 남긴 “문턱을 넘어온 사람 배불리 먹여라”는 말을 지금도 지키려 노력하고 있다.
■ 가난했던 시절의 애환, 그리움을 담아서 만드는 뚝배기 – 경기도 이천시
‘뚝배기’하면 모두가 떠올리는 천편일률적인 생김새가 있다. 가정에서 사용하는 뚝배기 대부분이 공장에서 대량생산으로 만들어지기 때문. 그런데 저렴한 뚝배기의 홍수 속에서 이종환(65세) 씨는 전통 방식의 수작업을 고집하고 있다. 그가 처음 흙을 만지기 시작한 건 열다섯 어린 나이였다. 초등학교를 졸업했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 진학은 꿈도 꾸기 어려웠다. 6.25 전쟁 때 포탄에 청력을 잃은 아버지는 가난했고, 어머니는 고된 현실을 견디지 못하고 가족을 떠났다. 두 동생을 먹이고 가르치기 위해 그는 도예가였던 친척 아저씨의 작업장에 취직했다. 다행히 재능이 있었는지 각종 미술품 공예전에서 수상하며 도예가로 이름도 알렸지만 이종환 씨는 25년 전부터 뚝배기에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우리 일상에서 사용하는 그릇이니 만큼 쓰임새가 많고, 꾸준하게 판매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계산이 있었다고.
가난 때문에 가족을 떠난 어머니를 떠올리며 그는 가족들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되고자 노력했다. 그 노력 중 하나가 바로 뚝배기였다. 도예가가 값싼 뚝배기를 만든다고 수군거리는 사람도 많았지만, 전통을 되살리고 가족을 지키겠다는 신념으로 뚝심 있게 뚝배기를 제작했다. 흙을 채로 거르는 작업에서부터 시작해 유약을 바르고 재벌구이에 이르기까지 보름 가까이 걸리는 작업. 흙을 빚고 깎아서 만드는 작업은 까다롭지만 다행히 가족의 도움으로 뚝배기 제작에 집중할 수 있었다. 고생하는 아내와 딸에게 종종 멸치국수로 보답한다는 이종환 씨. 멸치 반 국수 반을 넣고 끓이는 국수는 허기를 달래주는 동시에, 먹을 게 귀하던 시절 힘이 날 수 있게 해 주던 보양식이기도 했다. 멸치국수를 먹을 때면 그 시절 생각에 눈물부터 핑 돈다는데... 남편의 아픈 과거를 위로하기 위해 아내는 남편이 만든 뚝배기에 부지런히 정성과 애정을 담아 음식을 만들었다. 두 달에 한 번, 가마 작업하는 날마다 먹었던 돼지고기 애호박젓국찌개는 지금도 이종환 씨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다. 배우지 못한 설움에 눈물을 흘릴 때도 있었지만 뚝배기를 만들면서 그의 인생은 더욱 단단해졌다.
■ 어머니에게 위로를 건네는 딸의 뚝배기 한 상 – 충청남도 천안시
도예가였던 최진선(42세) 씨의 뚝배기는 어머니의 부엌에서 시작됐다. 1년에 제사가 14번, 종갓집 종부였던 어머니는 늘 제사 음식에 손님맞이에 바빴다. 부엌에서 종종대며 열심히 음식을 만들어도 정작 밥상엔 어머니의 자리가 없어서 서서 대충 먹고 치울 때가 많았다. 어머니가 이젠 자기 자신을 위해 요리하고, 예쁜 뚝배기에 담아 스스로를 대접하는 모습이 보고 싶었다는 진선 씨. 그래서 그녀의 뚝배기는 모양새가 뚝배기답지 않은 것이 많다. 손잡이가 달린 편수부터 프라이팬, 약탕기를 닮은 달임 주전자까지~ 전통의 뚝배기를 현대적으로 해석해서 다양하게 쓰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몇 해 전 식문화가 변화함에 따라 오븐 사용이 가능한 뚝배기도 개발해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런데 친정어머니 못지않게 진선 씨의 뚝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다. 바로 시어머니! 시아버지가 운영하는 도자기 공장에서 매일 40여 명의 직원에게 밥을 해 먹이느라 시어머니 역시 부엌에서 고단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평생 남을 먹이느라 부엌에서 허리 한 번 펴지 못한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 두 어머니를 초대해 직접 만든 뚝배기에 음식을 대접하는 것이 요즘 진선 씨의 즐거움 중 하나라고. 종갓집 맏딸이었던 진선 씨는 어릴 때부터 고사리손으로 어머니의 음식을 도왔고, 어머니도 자기 먹을 밥은 직접 할 줄 알아야 한다며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밥하는 걸 돕게 했다. 이렇게 음식을 해본 경험이 뚝배기 제작에도 그대로 반영이 됐으니, 어쩌면 친정어머니의 선견지명이 진선 씨를 뚝배기의 길로 이끌었는지도 모른다. 어머니에게 배운 음식에 신세대인 자신만의 감각을 더해 음식을 만들고, 두 어머니가 행복하게 먹는 모습을 볼 때 가장 뿌듯하다고 한다. 한 평생 가족을 위해 희생했던 어머니들에게 며느리이자, 딸이 선사하는 위로의 뚝배기 한 상을 만나본다.
※ 이 영상은 2024년 11월 14일 방영된 [한국인의 밥상]입니다.
#국밥 #순대국밥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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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근하게 달아올라, 오랫동안 따듯한 온기를 머금고 있는 뚝배기는 춥고, 배고팠던 시절, 한 끼라도 따듯하게 먹이고자 했던 어머니의 마음과 닮아있다.
코 끝에 스치는 차가운 바람은 뚝배기의 계절이 시작됐다는 신호탄과 같다. 한국인의 정서를 뚝배기처럼 진하게 담아낸 음식이 또 있을까? 모두가 고만고만하게 가난하던 시절, 어머니의 부엌에는 늘 뚝배기가 한자리 차지하고 있었다. 뚝배기는 열에 강하고, 한번 뜨거워지면 쉽게 식지 않는 특징을 지녔다. 그래서 식사가 끝날 때까지 따뜻하게 음식을 먹을 수 있었고, 염분이 많은 한국 음식을 담아도 녹슬지 않고 오래오래 사용할 수 있었다. 뚝배기가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건 조선시대 후기, 지체 높은 양반은 놋그릇과 백자를 주로 사용했고 서민은 옹기와 뚝배기로 식생활을 이어갔다. 그래서 옛날 어머니들은 한 끼라도 따뜻하게 먹이고 싶은 애정을 뚝배기에 가득 담았다. 저렴한 서민 그릇이니만큼 주막이나 장터 국밥집에서도 주로 뚝배기를 사용했다. 한국 사람이라면 뚝배기에 각별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어머니의 사랑이자 서민들의 애환(哀歡)이 담긴 그릇. 뚝배기는 배고픈 시절의 향수이자, 세월의 기억이다. 투박한 손으로 내어주던 어머니의 그릇, 뚝배기에 담긴 그리운 이야기와 추억의 밥상을 만나본다.
■ 깊고 진한 어머니의 손맛, 그리움이 담긴 뚝배기 -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닷새마다 한 번씩 추억 속 그리운 풍경이 펼쳐지는 천안의 성환장. 110년 역사를 자랑하는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명물은 국밥 골목이다. 60년 전 하나둘 천막을 치고 순대국밥을 끓이기 시작하면서 국밥 골목이 시작됐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당시, 주머니 가벼운 사람들은 순대국밥 한 그릇을 먹을 수 있는 장날만 손꼽아 기다리기도 했다.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의 허기를 채우고, 다시 살아갈 힘과 용기를 주었던 성환장의 국밥 골목.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진 요즘에도 그 추억의 맛을 찾아오는 이들이 많다. 따로 이름도 없이 천막 친 순서대로 손님들이 첫 번째, 두 번째 부르던 것이 그대로 가게 이름이 됐다. 나란히 줄지어 선 국밥 가게들 중에서도 가장 붐비는 곳은 두 번째 집. 돌아가신 어머니의 대를 이어 김성규 씨 (62세), 박정옥 씨(58세) 부부가 운영하고 있다. 어머니의 고집스러운 신념은 그대로 며느리에게로 이어졌다는데... 돼지 도축장에서 일한 삯으로 부속물을 받아서 순대를 만들었던 시어머니는 당신의 고생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손님에겐 늘 뚝배기가 넘치도록 음식을 내주었다. 아이를 낳고도 제대로 몸조리 할 틈 없이 장날이면 천막을 치고 순대를 팔았던 시어머니. 며느리인 정옥 씨의 순대국밥에는 2년 전 돌아가신 시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진하게 담겨 있다.
■ 설렁탕만 104년, 3대를 이어 온 추억의 뚝배기 한 그릇 – 경기도 안성시
이곳에서 처음 국밥집이 문을 연 건 104년 전인 1920년, 엄혹한 일제강점기였다. 3대째 이어 국밥집을 운영하는 김종열(65세) 씨는 안성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우시장이 있었던 덕에 국밥 가게를 시작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당시 종열 씨의 할머니가 우시장에서 얻어 온 부속물로 설렁탕을 끓이기 시작한 것. 고기가 귀하던 시절, 가장 여럿이 배를 채울 수 있는 방법은 국물을 내서 먹는 것이었다. 그렇게 할머니의 설렁탕집은 장터 바닥에서 시작해 104년을 이어왔다. 훌훌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설렁탕이지만 진한 맛을 제대로 내려면 24시간이 꼬박 걸린다. 고기 핏물 빼는 데 12시간, 그리고 다시 12시간 동안 국물을 우려야 제맛이 나기 때문이다. 덕분에 김종열 씨는 하루 대부분을 주방의 가마솥 앞에서 보낸다. 그리고 가마솥 앞에서 늘 어머니를 떠올린다. 종열 씨가 태어날 때부터 어머니는 할머니를 도와 설렁탕을 끓이고 있었다. 그가 처음으로 기억하는 어머니의 모습도 삼복더위에도 가마솥 앞을 떠나지 못하던 모습. 그리고 어머니의 자리를 이젠 아들이 대신하고 있다. “늘 이 자리에서 어머니를 만난다”고 말하는 김종열 씨, 그래서 어머니가 유언처럼 남긴 “문턱을 넘어온 사람 배불리 먹여라”는 말을 지금도 지키려 노력하고 있다.
■ 가난했던 시절의 애환, 그리움을 담아서 만드는 뚝배기 – 경기도 이천시
‘뚝배기’하면 모두가 떠올리는 천편일률적인 생김새가 있다. 가정에서 사용하는 뚝배기 대부분이 공장에서 대량생산으로 만들어지기 때문. 그런데 저렴한 뚝배기의 홍수 속에서 이종환(65세) 씨는 전통 방식의 수작업을 고집하고 있다. 그가 처음 흙을 만지기 시작한 건 열다섯 어린 나이였다. 초등학교를 졸업했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 진학은 꿈도 꾸기 어려웠다. 6.25 전쟁 때 포탄에 청력을 잃은 아버지는 가난했고, 어머니는 고된 현실을 견디지 못하고 가족을 떠났다. 두 동생을 먹이고 가르치기 위해 그는 도예가였던 친척 아저씨의 작업장에 취직했다. 다행히 재능이 있었는지 각종 미술품 공예전에서 수상하며 도예가로 이름도 알렸지만 이종환 씨는 25년 전부터 뚝배기에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우리 일상에서 사용하는 그릇이니 만큼 쓰임새가 많고, 꾸준하게 판매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계산이 있었다고.
가난 때문에 가족을 떠난 어머니를 떠올리며 그는 가족들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되고자 노력했다. 그 노력 중 하나가 바로 뚝배기였다. 도예가가 값싼 뚝배기를 만든다고 수군거리는 사람도 많았지만, 전통을 되살리고 가족을 지키겠다는 신념으로 뚝심 있게 뚝배기를 제작했다. 흙을 채로 거르는 작업에서부터 시작해 유약을 바르고 재벌구이에 이르기까지 보름 가까이 걸리는 작업. 흙을 빚고 깎아서 만드는 작업은 까다롭지만 다행히 가족의 도움으로 뚝배기 제작에 집중할 수 있었다. 고생하는 아내와 딸에게 종종 멸치국수로 보답한다는 이종환 씨. 멸치 반 국수 반을 넣고 끓이는 국수는 허기를 달래주는 동시에, 먹을 게 귀하던 시절 힘이 날 수 있게 해 주던 보양식이기도 했다. 멸치국수를 먹을 때면 그 시절 생각에 눈물부터 핑 돈다는데... 남편의 아픈 과거를 위로하기 위해 아내는 남편이 만든 뚝배기에 부지런히 정성과 애정을 담아 음식을 만들었다. 두 달에 한 번, 가마 작업하는 날마다 먹었던 돼지고기 애호박젓국찌개는 지금도 이종환 씨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다. 배우지 못한 설움에 눈물을 흘릴 때도 있었지만 뚝배기를 만들면서 그의 인생은 더욱 단단해졌다.
■ 어머니에게 위로를 건네는 딸의 뚝배기 한 상 – 충청남도 천안시
도예가였던 최진선(42세) 씨의 뚝배기는 어머니의 부엌에서 시작됐다. 1년에 제사가 14번, 종갓집 종부였던 어머니는 늘 제사 음식에 손님맞이에 바빴다. 부엌에서 종종대며 열심히 음식을 만들어도 정작 밥상엔 어머니의 자리가 없어서 서서 대충 먹고 치울 때가 많았다. 어머니가 이젠 자기 자신을 위해 요리하고, 예쁜 뚝배기에 담아 스스로를 대접하는 모습이 보고 싶었다는 진선 씨. 그래서 그녀의 뚝배기는 모양새가 뚝배기답지 않은 것이 많다. 손잡이가 달린 편수부터 프라이팬, 약탕기를 닮은 달임 주전자까지~ 전통의 뚝배기를 현대적으로 해석해서 다양하게 쓰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몇 해 전 식문화가 변화함에 따라 오븐 사용이 가능한 뚝배기도 개발해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런데 친정어머니 못지않게 진선 씨의 뚝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다. 바로 시어머니! 시아버지가 운영하는 도자기 공장에서 매일 40여 명의 직원에게 밥을 해 먹이느라 시어머니 역시 부엌에서 고단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평생 남을 먹이느라 부엌에서 허리 한 번 펴지 못한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 두 어머니를 초대해 직접 만든 뚝배기에 음식을 대접하는 것이 요즘 진선 씨의 즐거움 중 하나라고. 종갓집 맏딸이었던 진선 씨는 어릴 때부터 고사리손으로 어머니의 음식을 도왔고, 어머니도 자기 먹을 밥은 직접 할 줄 알아야 한다며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밥하는 걸 돕게 했다. 이렇게 음식을 해본 경험이 뚝배기 제작에도 그대로 반영이 됐으니, 어쩌면 친정어머니의 선견지명이 진선 씨를 뚝배기의 길로 이끌었는지도 모른다. 어머니에게 배운 음식에 신세대인 자신만의 감각을 더해 음식을 만들고, 두 어머니가 행복하게 먹는 모습을 볼 때 가장 뿌듯하다고 한다. 한 평생 가족을 위해 희생했던 어머니들에게 며느리이자, 딸이 선사하는 위로의 뚝배기 한 상을 만나본다.
※ 이 영상은 2024년 11월 14일 방영된 [한국인의 밥상]입니다.
#국밥 #순대국밥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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