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재발견 [태고의 자연을 품다 - 경남 창녕]
1. 국내 최대의 내륙습지 우포늪과 가시연꽃 마을
1억 4천만 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알려진 우포늪은 231만㎡(약 70만 평)의 광활한 습지에 1500여 종의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는 생태계의 보고다. 우포의 유일한 교통수단인 소달구지를 타고 둘러보는 늪의 풍경은 고즈넉하고 평화롭기만 하다. 우포, 목포, 사지포, 쪽지벌, 네 개의 늪으로 이뤄진 우포는 사계절 다른 얼굴을 지니고 있다. 특히 겨울에는 쇠오리, 청둥오리, 고니, 독수리, 기러기 등 철새들의 군무가 장관을 이루는데... 원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우포는 다양한 생물들 뿐 아니라 인근에서 살아온 주민들에게도 풍요로운 삶의 터전이었다.
동 트는 새벽, 작은 나룻배에 몸을 싣고 고기를 잡는 소목 마을 어부들과 늪에서 나는 말밤(마름 열매)으로 배고픈 시절을 견뎌냈다는 가시연꽃 마을 주민들. 우포를 ‘마을 금고’라 부르며 평생을 늪과 더불어 살아온 이들의 지난 세월을 들어본다.
2. 어제와 오늘이 공존하는 곳 - 창녕 읍내와 계팔마을 칠첩반상
영남의 중추인 낙동강을 자양분 삼아 번성했던 창녕은 가야에서 현재까지 2천 년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지붕 없는 박물관’이다. 창녕 읍내에는 18세기에 지어진 하씨 고택을 비롯해 백 년 이상 된 고가들과 가야 고분, 신라 석탑, 조선의 석빙고 등 문화재들이 즐비하다.
창녕에서 가장 큰 장터인 창녕 5일장도 읍내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다. 시골 장터 특유의 활기차고 정겨운 모습과 함께 고기 한 점 먹기 힘들었던 시절, 지역 주민들이 즐겨 먹었다는 ‘수구레(소가죽 안쪽의 쫄깃한 지방살) 국밥’의 얼큰한 맛이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읍내에서 멀지 않은 고암면에는 수백 년 전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 고색창연한 건물들이 줄지어 선 마을이 있다. 조선시대 5현 중 한 사람인 한훤당 김굉필의 후손들이 모여 사는 이 마을에는 일제 강점기 항일독립운동에 앞장서며 후학양성에 힘썼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이 전해내려 오고 있다. 지금도 집안에 손님이 찾아오면 칠첩반상 독상을 차려내며 ‘경객지도(敬客之道)’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계팔 마을에서 옛 선비들의 정신을 되새겨본다.
3. 불뫼(火山), 대초원을 품다 - 화왕산과 감리 미나리 마을
창녕읍과 고암면에 걸쳐 있는 창녕의 진산, 화왕산은 선사시대 화산으로 불의 기운이 강해 ‘불뫼’ 또는 ‘큰 불뫼’라 불렸다. 해발 757m의 정상에는 가야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알려진 둘레 2600m의 화왕산성이 있는데, 임진왜란 당시 의병의 근거지로 활용했던 군사적 요충지이기도 하다. 성 안에는 화산의 분화구였던 세 개의 연못과 함께 약 5만 6천여 평의 억새 초원이 펼쳐져 있어 장관을 이룬다.
화왕산 줄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옥천 계곡을 따라가다 보면 원효대사가 아홉 마리의 용이 승천하는 것을 보고 이름을 지었다는 천년 고찰 관룡사와 용선대 마루를 지키고 앉은 석조여래좌상을 만날 수 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서 산 아래를 굽어보고 있는 부처의 미소는 온화하기 그지없다.
화왕산 아래 자리 잡은 감리에서는 화왕산 맑은 물로 재배한 미나리 수확이 한창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갓 수확한 미나리 맛을 보기 위해 전국에서 식객들이 찾아온다는데... 화왕산에 찾아온 초봄의 향기를 느껴본다.
4. 7080의 추억 속에 몸을 담그다. - 부곡 온천
땅의 모양이 가마솥을 닮았다는 부곡면에는 따뜻한 물이 샘솟는 우물이 세 개나 있어 눈이 와도 빨리 녹고 겨울에도 맨손으로 빨래를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실제로 15세기 말에 쓰인 [동국여지승람]과 [동국통감]에도 이곳에 온천이 있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화왕산과 덕암산 등 화산이 많았던 창녕 땅에서 뜨거운 물이 솟아나온다는 이야기는 지역 주민들에게는 낯선 것이 아니었다. 1970년대 초, 온천이 개발되면서 ‘옴샘’의 전설과 역사는 현실이 되었고 부곡은 1970-80년대 가족휴양지와 신혼여행 1번지로 각광받았다. 해외여행은 생각지도 못했던 30여 년 전, 부곡으로 신혼여행을 왔던 중년의 부부들과 함께 부곡온천에 얽힌 추억을 되짚어본다.
5. 낙동강 굽이굽이 세월을 품고 - 개비리길
창녕을 끼고 흐르는 낙동강 변에는 벼랑을 따라 만들어진 ‘개비리길’이 있다. ‘비리’는 ‘벼랑’이라는 뜻으로 ‘개나 다닐 수 있는 벼랑의 좁은 길’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현재 남아 있는 다섯 개의 개비리길 중 옛 모습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곳이 바로 영아지 마을과 용산리를 잇는 4km 거리의 ‘남지 개비리길’이다. 산과 물에 가로 막힌 오지마을, 영아지에서는 길일이라는 정월 첫 번째 ‘말날(말의 날)’을 맞아 장 담그기가 한창인데.. 지척의 마을과 읍내로 가려해도 수십 리씩 산속을 돌아 나가야 했던 마을 주민들이 지름길을 내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만들었던 개비리길에는 팔 수 있는 것은 죄다 읍내 장으로 가지고 나가 자식들 학비며 생활비로 바꿔오던 시절의 눈물과 애환이 배어 있다.
#습지 #우포늪 #환경
1. 국내 최대의 내륙습지 우포늪과 가시연꽃 마을
1억 4천만 년 전에 형성된 것으로 알려진 우포늪은 231만㎡(약 70만 평)의 광활한 습지에 1500여 종의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는 생태계의 보고다. 우포의 유일한 교통수단인 소달구지를 타고 둘러보는 늪의 풍경은 고즈넉하고 평화롭기만 하다. 우포, 목포, 사지포, 쪽지벌, 네 개의 늪으로 이뤄진 우포는 사계절 다른 얼굴을 지니고 있다. 특히 겨울에는 쇠오리, 청둥오리, 고니, 독수리, 기러기 등 철새들의 군무가 장관을 이루는데... 원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우포는 다양한 생물들 뿐 아니라 인근에서 살아온 주민들에게도 풍요로운 삶의 터전이었다.
동 트는 새벽, 작은 나룻배에 몸을 싣고 고기를 잡는 소목 마을 어부들과 늪에서 나는 말밤(마름 열매)으로 배고픈 시절을 견뎌냈다는 가시연꽃 마을 주민들. 우포를 ‘마을 금고’라 부르며 평생을 늪과 더불어 살아온 이들의 지난 세월을 들어본다.
2. 어제와 오늘이 공존하는 곳 - 창녕 읍내와 계팔마을 칠첩반상
영남의 중추인 낙동강을 자양분 삼아 번성했던 창녕은 가야에서 현재까지 2천 년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지붕 없는 박물관’이다. 창녕 읍내에는 18세기에 지어진 하씨 고택을 비롯해 백 년 이상 된 고가들과 가야 고분, 신라 석탑, 조선의 석빙고 등 문화재들이 즐비하다.
창녕에서 가장 큰 장터인 창녕 5일장도 읍내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다. 시골 장터 특유의 활기차고 정겨운 모습과 함께 고기 한 점 먹기 힘들었던 시절, 지역 주민들이 즐겨 먹었다는 ‘수구레(소가죽 안쪽의 쫄깃한 지방살) 국밥’의 얼큰한 맛이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읍내에서 멀지 않은 고암면에는 수백 년 전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 고색창연한 건물들이 줄지어 선 마을이 있다. 조선시대 5현 중 한 사람인 한훤당 김굉필의 후손들이 모여 사는 이 마을에는 일제 강점기 항일독립운동에 앞장서며 후학양성에 힘썼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이 전해내려 오고 있다. 지금도 집안에 손님이 찾아오면 칠첩반상 독상을 차려내며 ‘경객지도(敬客之道)’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계팔 마을에서 옛 선비들의 정신을 되새겨본다.
3. 불뫼(火山), 대초원을 품다 - 화왕산과 감리 미나리 마을
창녕읍과 고암면에 걸쳐 있는 창녕의 진산, 화왕산은 선사시대 화산으로 불의 기운이 강해 ‘불뫼’ 또는 ‘큰 불뫼’라 불렸다. 해발 757m의 정상에는 가야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알려진 둘레 2600m의 화왕산성이 있는데, 임진왜란 당시 의병의 근거지로 활용했던 군사적 요충지이기도 하다. 성 안에는 화산의 분화구였던 세 개의 연못과 함께 약 5만 6천여 평의 억새 초원이 펼쳐져 있어 장관을 이룬다.
화왕산 줄기를 타고 흘러내리는 옥천 계곡을 따라가다 보면 원효대사가 아홉 마리의 용이 승천하는 것을 보고 이름을 지었다는 천년 고찰 관룡사와 용선대 마루를 지키고 앉은 석조여래좌상을 만날 수 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에서 산 아래를 굽어보고 있는 부처의 미소는 온화하기 그지없다.
화왕산 아래 자리 잡은 감리에서는 화왕산 맑은 물로 재배한 미나리 수확이 한창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갓 수확한 미나리 맛을 보기 위해 전국에서 식객들이 찾아온다는데... 화왕산에 찾아온 초봄의 향기를 느껴본다.
4. 7080의 추억 속에 몸을 담그다. - 부곡 온천
땅의 모양이 가마솥을 닮았다는 부곡면에는 따뜻한 물이 샘솟는 우물이 세 개나 있어 눈이 와도 빨리 녹고 겨울에도 맨손으로 빨래를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실제로 15세기 말에 쓰인 [동국여지승람]과 [동국통감]에도 이곳에 온천이 있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화왕산과 덕암산 등 화산이 많았던 창녕 땅에서 뜨거운 물이 솟아나온다는 이야기는 지역 주민들에게는 낯선 것이 아니었다. 1970년대 초, 온천이 개발되면서 ‘옴샘’의 전설과 역사는 현실이 되었고 부곡은 1970-80년대 가족휴양지와 신혼여행 1번지로 각광받았다. 해외여행은 생각지도 못했던 30여 년 전, 부곡으로 신혼여행을 왔던 중년의 부부들과 함께 부곡온천에 얽힌 추억을 되짚어본다.
5. 낙동강 굽이굽이 세월을 품고 - 개비리길
창녕을 끼고 흐르는 낙동강 변에는 벼랑을 따라 만들어진 ‘개비리길’이 있다. ‘비리’는 ‘벼랑’이라는 뜻으로 ‘개나 다닐 수 있는 벼랑의 좁은 길’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현재 남아 있는 다섯 개의 개비리길 중 옛 모습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곳이 바로 영아지 마을과 용산리를 잇는 4km 거리의 ‘남지 개비리길’이다. 산과 물에 가로 막힌 오지마을, 영아지에서는 길일이라는 정월 첫 번째 ‘말날(말의 날)’을 맞아 장 담그기가 한창인데.. 지척의 마을과 읍내로 가려해도 수십 리씩 산속을 돌아 나가야 했던 마을 주민들이 지름길을 내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만들었던 개비리길에는 팔 수 있는 것은 죄다 읍내 장으로 가지고 나가 자식들 학비며 생활비로 바꿔오던 시절의 눈물과 애환이 배어 있다.
#습지 #우포늪 #환경
- Category
- 다큐멘터리 - Documentary
- Tags
- KBS, 다큐멘터리, doc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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