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뉴스] 19.05.29 화살머리고지서 남북공동 유해발굴 위한 기초발굴 한창
정동미) 남과 북은 지난해 9.19 군사합의 때 DMZ 내에서 시범적으로 남북공동유해발굴을 시행하기로 한바있죠.
강경일) 이에 북측이 호응해 올 경우에 대비해 우리 측은 4월 1일부터 사전 준비차원에서 군사분계선 이남지역 지뢰제거와 기초발굴 작업을 진행 중인데요, 그 현장을 김동희 기자가 다녀왔습니다.
북에서 남으로 이어지는 동쪽 능선이 마치 화살처럼 생겼다고 해서 ‘화살촉’ 또는 ‘화살머리고지’라 부르는 이곳. 6.25 전쟁 때인 1951년 11월부터 1953년 7월까지 네 차례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으로, 아군 310명과 적군 3072명의 전사자가 발생했습니다.
비탈진 화살머리고지 한 산기슭, 남북공동 유해발굴에 대비한 기초발굴 작업이 한창입니다. 차량이 통제된 가운데 15~20미터 폭으로 구역을 나눠 예초기로 잡초 등을 제거하고, 3미터 폭으로 구역을 쪼개 지뢰 제거작전 중 유해가 식별되면 국방부 유해발굴단 감시단이 유해를 수습하고 유가족을 찾아줍니다. 지난해 DMZ발굴 중 처음으로 신원이 확인돼 65년 만에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온 故 박재권 이등중사의 유해도 이 과정에서 발견됐습니다.
사람 키 높이만큼 움푹 파인 동굴 모양의 진지. 아군이 숨어있다 적을 향해 사격하는 대피진지로 추정되며, 발굴 현장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중공군에 의해 전지를 빼앗기고 폭음소리가 많이 들렸다는 6‧25 참전 용사들의 증언과 실제로 발견된 무수한 포탄들이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가늠하게 합니다.
SOV. 강재민 상사 /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참전용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약 1000발 정도의 포탄이 이곳으로 떨어졌다고 합니다. 실질적으로 이곳에서 많은 포탄파편들이 산재되어 있습니다. 아군의 철모에 남은 두개골 뼈 조각 두 점과 미군의 방탄조끼가 눈에 띕니다. 손전등과 정수제, 칫솔 그리고 아군임을 식별하는 증거인 스냅단추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발사되지 못한 총알을 그대로 간직한 총기는 멈춰버린 세월의 한 단면이기도 합니다.
INT. 강재민 상사 /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6‧25 당시 그 모습 그대로 유품과 유해들이 그대로 보존돼있는 상태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남북이) DMZ 유해발굴작전이 남북공동발굴을 하자고한 9‧19 남북 군사합의서에 이행을 잘 했으면 좋겠고 좀 더 평화적인 모습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남북이 공동발굴작업을 해서) 전국에 있는 모든 지역을 다 샅샅이 훑어서 반드시 유해를 찾고, 그 유해가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는 그날까지 작은 한 점의 뼈 조각이라도 반드시 찾아서 가족에게 돌려드리는 게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총알 30발이 박힌 흔적이 선명하게 남은 수통은 무차별적으로 총알이 오고가던 전시 상황을 연상케 합니다.
INT. 최예린 하사 / 육군 5사단
6‧25 전쟁 당시 유해와 유품들을 발견하면서 전쟁이라는 단어를 실감했고,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나라를 위해 돌아가신 선배들의 유해를 보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지금까지 유해발굴 현장에서는 총 325점의 유해와 23,055점의 유품이 발견된 상태입니다.
스탠딩. 김동희 기자
앞으로 얼마나 많은 ‘박재권 이등중사’가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국방뉴스 김동희입니다.
정동미) 남과 북은 지난해 9.19 군사합의 때 DMZ 내에서 시범적으로 남북공동유해발굴을 시행하기로 한바있죠.
강경일) 이에 북측이 호응해 올 경우에 대비해 우리 측은 4월 1일부터 사전 준비차원에서 군사분계선 이남지역 지뢰제거와 기초발굴 작업을 진행 중인데요, 그 현장을 김동희 기자가 다녀왔습니다.
북에서 남으로 이어지는 동쪽 능선이 마치 화살처럼 생겼다고 해서 ‘화살촉’ 또는 ‘화살머리고지’라 부르는 이곳. 6.25 전쟁 때인 1951년 11월부터 1953년 7월까지 네 차례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으로, 아군 310명과 적군 3072명의 전사자가 발생했습니다.
비탈진 화살머리고지 한 산기슭, 남북공동 유해발굴에 대비한 기초발굴 작업이 한창입니다. 차량이 통제된 가운데 15~20미터 폭으로 구역을 나눠 예초기로 잡초 등을 제거하고, 3미터 폭으로 구역을 쪼개 지뢰 제거작전 중 유해가 식별되면 국방부 유해발굴단 감시단이 유해를 수습하고 유가족을 찾아줍니다. 지난해 DMZ발굴 중 처음으로 신원이 확인돼 65년 만에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온 故 박재권 이등중사의 유해도 이 과정에서 발견됐습니다.
사람 키 높이만큼 움푹 파인 동굴 모양의 진지. 아군이 숨어있다 적을 향해 사격하는 대피진지로 추정되며, 발굴 현장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중공군에 의해 전지를 빼앗기고 폭음소리가 많이 들렸다는 6‧25 참전 용사들의 증언과 실제로 발견된 무수한 포탄들이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가늠하게 합니다.
SOV. 강재민 상사 /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참전용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약 1000발 정도의 포탄이 이곳으로 떨어졌다고 합니다. 실질적으로 이곳에서 많은 포탄파편들이 산재되어 있습니다. 아군의 철모에 남은 두개골 뼈 조각 두 점과 미군의 방탄조끼가 눈에 띕니다. 손전등과 정수제, 칫솔 그리고 아군임을 식별하는 증거인 스냅단추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발사되지 못한 총알을 그대로 간직한 총기는 멈춰버린 세월의 한 단면이기도 합니다.
INT. 강재민 상사 /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6‧25 당시 그 모습 그대로 유품과 유해들이 그대로 보존돼있는 상태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남북이) DMZ 유해발굴작전이 남북공동발굴을 하자고한 9‧19 남북 군사합의서에 이행을 잘 했으면 좋겠고 좀 더 평화적인 모습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남북이 공동발굴작업을 해서) 전국에 있는 모든 지역을 다 샅샅이 훑어서 반드시 유해를 찾고, 그 유해가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는 그날까지 작은 한 점의 뼈 조각이라도 반드시 찾아서 가족에게 돌려드리는 게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총알 30발이 박힌 흔적이 선명하게 남은 수통은 무차별적으로 총알이 오고가던 전시 상황을 연상케 합니다.
INT. 최예린 하사 / 육군 5사단
6‧25 전쟁 당시 유해와 유품들을 발견하면서 전쟁이라는 단어를 실감했고,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나라를 위해 돌아가신 선배들의 유해를 보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지금까지 유해발굴 현장에서는 총 325점의 유해와 23,055점의 유품이 발견된 상태입니다.
스탠딩. 김동희 기자
앞으로 얼마나 많은 ‘박재권 이등중사’가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국방뉴스 김동희입니다.
- Category
- 다큐멘터리 - Document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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