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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뉴스]17.06.28 '여기서 죽더라도 끝까지 지켜낸다', 최후의 저지선 낙동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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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최후의 보루 낙동강 방어선, 구축 과정과 의미 (김인하)
강경일)
6?25전쟁 발발 67주년을 맞아 최후의 보루였던 낙동강 방어선 전투를 재조명하는 시간. 그 두 번째 시간인데요.
이혜인)
이번 시간엔 1950년 8월, 왜 낙동강에 방어선이 구축됐고,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가졌는지 살펴봅니다. 김인하 대윕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불법남침으로 시작된 6?25전쟁.
북한군의 공세에 우리 군과 미군은 후퇴에 후퇴를 거듭,
남한 영토의 절반이상을 빼앗기게 됩니다.
[INT] 최용성 / 육군3사관학교 군사사학과 명예교수
7월 20일, 북한군이 대전을 점령하게 됩니다. 따라서 전선을 유지하기 위해서 8월 1일,
전 군에게 낙동강 남안과 동안으로 철수를 하라고 명령을 하달하게 됩니다.
(낙동강을 따라) 전선으로 쭉 이뤄졌습니다. 그래서 북한군 특유의 전술인 침투포위전술을
막아낼 수 있는 그러한 선이 낙동강 방어선이 됩니다.
그렇다면 국군과 유엔군은 왜 낙동강을 기준으로 방어선을 구축했을까?
[INT] 최용성 / 육군3사관학교 군사사학과 명예교수
“후방으로 철수해서 방어정면을 축소하면 작은 병력으로 전선을 유지할 수 있겠다”
또 한가지는 “이왕이면 그러한 상태에서 천연적인 장애물이 있는 곳”
그런 의미에서 (산맥이) 횡으로 되어있으면 북한군이 공격하는 것에 대해서 방어하기가 유리한
지형이죠. 종으로 된 것보다. 또한 낙동강이 이렇게 흐르고 있으니, 방어하는 데는 천혜의 요새다.
경상도를 둘러싸고 있는 낙동강 방어선은 적의 기동을 지연하는 지연선이 아니라,
더 이상 후퇴할 곳이 없었던 말 그대로 최후의 저지선이었습니다.
[INT] 최용성 / 육군3사관학교 군사사학과 명예교수
미군이 우리 정일권 총참모장에게 언지를 하게 되는데, “앞으로 낙동강 방어선이 무너지면
한국군 2개 사단과 민간인 10만 명 정도가 미군과 같이 철수를 하게 될 것이다.”
낙동강 방어선이 붕괴가 됐다면, 우리는 제2의 대만이 되었거나
그렇지 않으면 해외 망명정부를 세워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STAND OR DIE!', ‘여기서 죽더라도 끝까지 지키겠다’
낙동강 방어선 전투의 지휘관 워커 장군의 유명한 말입니다. 그만큼 상황은 극박했습니다.
[INT] 최용성 / 육군3사관학교 군사사학과 명예교수
‘전선은 유지가 됐는데 어떻게 막을 것인가’가 관건이었습니다.
워커 장군의 트레이드 마크는 ‘공세적인 방어’입니다.
적의 공격에 의해서 어느 한 곳이 피탈되면 그대로 철수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피탈된 지역에서 병력을 철수해서 재편성을 하고,
다시 그 병력으로 피탈된 지역을 역습해 회복하는 작전입니다.
결국, 치열한 공방 끝에 낙동강 방어선 전투는 우리의 승리로 돌아왔습니다.
북한군의 대대적인 8월과 9월 공세를 성공적으로 저지하고
인천상륙작전의 교두보를 마련했지만, 전선을 지키기 위한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다음 시간엔 낙동강 방어선 전투 그 치열했던 과정을 소개합니다.
국방뉴스 김인합니다.
Category
다큐멘터리 - Document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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