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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ll] 고향민국 - 부산, 다시 찾은 제2의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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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란민의 보금자리, 아미동과 우암동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며 남쪽으로 후퇴했던 대한민국.
그해 8월 18일에 임시수도로 지정되며 수많은 피란민이 부산으로 몰리게 되었다.
당시 역사를 담은 이승만 전 대통령의 관저이자 임시수도기념관이 현재 부산에 남아있다.
많은 사람들로 인해 변변한 보금자리를 찾기 어려웠던 그때,
피란민들의 애환이 담긴 두 동네, 아미동과 우암동으로 떠나본다.

부산으로 피란 온 사람들은 몸 누일 곳을 찾아 깊숙하고 높은 곳으로 이동했다.
일본인 공동묘지까지 올라갔던 피란민들로 인해 과거 일본인의 공동묘지와 화장터가 있었던 서구 아미동에 마을이 형성되었고,
오늘날 역사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는 ‘비석 문화마을’이 되었다.
피란민들에게 자리를 내어준 일본인 혼령들을 위로하는 아미동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아미동의 사찰인 대성사를 찾아가 본다.

한편, 언덕에 위치한 큰 바위가 소 모양과 같다하여 이름 붙여진 남구 우암동에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수출하는 소를 검사하던 ‘이출우검역소’가 있었다.
그 안에 있던 소막사는 해방 직후 귀환 동포와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이곳 소막마을에서 자란 피란민 2세 공경식 씨는 당시 피란민에게 소막사는 호텔이나 다름없었다는데...
산업화 이후 살림살이가 나아진 사람들은 다른 집을 사거나 2층으로 증축하기 시작했고
좁은 1층에 비해 2층을 넓게 지으면서 일명 ‘가분수’ 집이 생기게 되었다고.

또, 부모님과 함께 흥남에서 부산으로 피난 온 유상모 씨는 외할머니로부터 시작된 부산의 향토 음식 밀면을 5대째 만들고 있다.
이제는 또 다른 고향이 된 부산에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밀면을 이어가고 있다는데...

부산을 제2의 고향으로 삼은 피란민들의 흔적을 찾아 떠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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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y
다큐멘터리 - Documentary
Tags
EBS, EBS documentary, EBS 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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