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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뉴스]18.04.25 주간 용어 돋보기 - 판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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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 (김인하)
국방뉴스에선 27일 앞두고 있는 남북정상회담과 관련된 소식들을 전해드리고 있는데요.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최초로 판문점에서 열려 더욱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회담장소인 판문점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판문점은 우리나라 파주시와 북한의 개성시 사이에 위치한 곳의 지명입니다.
판문점은 널빤지로 만든 문들이 많다고 해서 널문리라고 불리는 곳이었는데요.
어째서 널문리가 판문점이라는 한자식 표기로 바뀐 걸까요?
그 유래는 6?25전쟁이 한창이었던 1951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전쟁이 1년 정도 지속되자 유엔군사령부와 공산 측은 휴전을 위한 회담을 준비하는데요. 51년 7월, 최초로 휴전회담의 예비회담이 북한 개성에서 열리고 후속 회담 장소는 위치 상 남북의 중간지점이 좋겠다고 합의하죠. 개성에서 보다 남쪽에 있는 작은 마을, 널문리가 회담장소로 선정됩니다.
유엔군 대표들은 중국 측 대표가 회담 장소를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회담장 인근 주막에 한자식 표기로 ‘판문점’이라는 간판을 걸어뒀다고 하는데요. 널문리 주막을 그대로 한자로 옮기면 판문점이 되는데, 중국식 이다보니 우리에게 익숙한 이름은 아니죠.
1951년 10월 25일, 이곳에서 휴전회담이 진행되면서 판문점이라는 이름이 본격적으로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됐습니다. 6?25전쟁이 끝나고 판문점은 유일하게 휴전선을 설치하지 않은 지역, 공동경비구역으로 설정됩니다. 회담을 통해 평화를 관리하고, 포로를 교환하는 등 갈등을 완충하는 장소로 만들어진 거죠.
이에 따라 판문점 안에선 남북이 한데 어울려 경비를 서면서 왕래도 자유로웠는데요. 1976년 도끼만행사건 이후 판문점 내에 군사분계선을 설치하고 서로 대치상태로 근무하는 지금의 모습이 됐습니다. 이 후 판문점은 첨예한 갈등과 분단을 상징하는 공간이 돼버렸지만, 남북이 만나는 유일한 소통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꾸준히 해왔는데요.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소떼 방북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회담 방북부터
360회의 크고 작은 남북회담 등이 진행되며 평화에 대한 희망의 불씨를 지켜왔습니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이 판문점에 있는 우리 측 건물, 평화의 집에서 진행될 텐데요.
북한 정상이 평화를 상징하는 판문점으로 직접 오는 건
1953년 정전협정 이후로 처음이라 큰 관심을 모으고 있죠.
과연 남북의 평화를 상징하는 판문점에 진정한 봄이 찾아올지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주간용어 돋보기 지금까지 판문점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Category
다큐멘터리 - Document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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