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고의 공업교육기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서울공업고등학교.
구한말 상공학교로부터 그 역사적 뿌리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운동장 정면에 자리한 본관 건물은
경성공립공업학교 시절 지어진 것으로,
일부 수리를 했으나 대부분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습니다.
경성공립공업학교는 건축, 기계, 전기 등
여덟개 학과에, 학생수 천여명을 자랑하며,
이른바 ‘동양 제일의 공업학교’로 성장했습니다.
1951년 교육법 개정에 따라,
경성공립공업학교는 다시 ‘서울공업고등학교’로 개편됩니다.
전쟁이 끝난 후 한동안 가교사 건물을 전전해야
했던 서울공업고등학교는 1955년이 되어서야
본래의 자리로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해외 원조와 정부 지원금 등으로 건물 일체를 수리하고 실습공장을 대거 확충함으로써,
불과 3~4년 만에 공업학교의 면모를 갖춰 나갔습니다.
1960~70년대 서울공고는 각종 기술경연대회에서
최고의 실력을 뽐내며 화려한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부강한 나라의 기틀은 실업교육으로부터 시작된다는
100여년 전의 교육 철학이
지금의 서울공업고등학교를 탄생시켰습니다.
앞으로는 미래세대를 위한 기술교육의 선두주자로 거듭나길 기대해 봅니다.
서울공업고등학교.
구한말 상공학교로부터 그 역사적 뿌리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운동장 정면에 자리한 본관 건물은
경성공립공업학교 시절 지어진 것으로,
일부 수리를 했으나 대부분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습니다.
경성공립공업학교는 건축, 기계, 전기 등
여덟개 학과에, 학생수 천여명을 자랑하며,
이른바 ‘동양 제일의 공업학교’로 성장했습니다.
1951년 교육법 개정에 따라,
경성공립공업학교는 다시 ‘서울공업고등학교’로 개편됩니다.
전쟁이 끝난 후 한동안 가교사 건물을 전전해야
했던 서울공업고등학교는 1955년이 되어서야
본래의 자리로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해외 원조와 정부 지원금 등으로 건물 일체를 수리하고 실습공장을 대거 확충함으로써,
불과 3~4년 만에 공업학교의 면모를 갖춰 나갔습니다.
1960~70년대 서울공고는 각종 기술경연대회에서
최고의 실력을 뽐내며 화려한 전성기를 맞았습니다.
부강한 나라의 기틀은 실업교육으로부터 시작된다는
100여년 전의 교육 철학이
지금의 서울공업고등학교를 탄생시켰습니다.
앞으로는 미래세대를 위한 기술교육의 선두주자로 거듭나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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